/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수상개화란 ‘철수개화(鐵樹開花)’라는 말에서 유래된 계책명이다. ‘쇠로된 나무에 꽃이 핀다’ 혹은 ‘죽은 나무에 꽃이 핀다’는 말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일이 전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없으면서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약하면서도 강하고 큰 것처럼 보이게 하여, 적을 착각에 빠뜨리라는 말인데,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죽은 나무에 조화(造花)를 매달아 마치 살아 있는 나무처럼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계략에 의해 위장되어야 하고 상대 또한 착각 하거나 속아주어야 한다.
삼국지의 조조가 이 계책을 쓴 적이 있었다. ‘백만 대군이 강남을 치러 간다’고 소문을 냄으로써 손권으로 하여 아예 싸울 전의조차 갖지 못하도록 할 요량이었지만, 그의 속셈은 그러나 제갈량에게 간단히 간파당하고 만다.
제갈량은 조조의 병력이 많아 봐야 30만을 넘지 못하리라는 것을 계산해 냈으며, 결국은 제갈량의 바람(東南風)과 주유의 불(火攻)에 의해서 조조의 ‘백만 대군’은 순식간에 궤멸 당했고 조조 자신도 갑옷과 무기를 팽개친 채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신과 장이(張耳)는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조나라 정벌에 나서게 되었다. 조나라로 통하는 입구인 정경의 험난함을 잘 알고 있었던 그들은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고 정경 입구의 삼십 리 밖에서 일단 주둔한 후, 장사꾼으로 가장한 첩자들을 조나라에 보내서 상대의 움직임을 염탐하도록 했다.
한신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왕은 급히 진여(陳余) 등을 불러 대책을 숙의했다. 모사(謀士)인 이좌거(李左車)가 의견을 말했다.
“한신은 지금 위(魏)나라를 정복한 여세를 몰아 우리 조나라까지 넘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한군의 보급선이 너무 길기 때문에 그들은 속전속결을 원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경이 험난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곳은 말 한 필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아서 마차는 물론 군사들도 대오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그곳을 진격해 오자면 군수물자는 어쩔 수 없이 후방에 남겨두게 될 것입니다. 제게 삼만의 병력만 주신다면, 길을 멀리 돌아 접근하여 그들의 군량을 탈취해버리겠습니다. 이쪽에서는 보루를 높이 쌓고 적과의 교전을 피한 채 수비에만 치중하신다면, 한군은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질 것입니다. 더구나 군량도 없는 그들 입장에서는 더욱더 어려운 상황이 되지 않겠습니까?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서 한신과 장의의 머리가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다만 험난한 지형만을 믿고 대적해 싸운다면 적을 결코 격퇴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요컨대 이것이 바로 전술의 기동성 아니겠습니까?”
진여는 원래 서생 출신의 장수였다. 실전에 대한 식견이 부족함에도, 그는 평소 자신이 인의(仁義)로 군을 통솔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여 어떤 꾀나 술책을 쓰는 것을 싫어했다. 이번에도 그는 이좌거의 계략을 따르지 않았다.
조나라에 다녀온 첩자가 이런 사정을 한신에게 보고하자 한신은 그 이상 기쁠 수가 없었다. 즉시 각 장령들에게 밀계를 내려서 각자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했다. 한밤중이 되자 한군은 요새를 빠져나와 조나라로 소리 없이 진군했다.
모든 군사들은 각자 조금씩의 마른 식량을 지닌 채였다. 한신은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고자 소리쳤다.
“아침은 조나라의 수도에서 따뜻하게 먹는다!”
이렇게 격려한 후, 다시 2천의 정병을 선발하여 한군의 붉은색 깃발을 들고 산속에 깊숙이 매복해 있도록 일렀다.
“우리가 조군과 격돌하게 되면, 나는 거짓으로 퇴각을 하여 그들을 유인할 것이다. 너희들은 잘 보고 있다가 조군이 진지를 빠져나와 우리를 추격하게 되면, 그 즉시 바로 조군의 진지로 쳐들어가 그들의 기치를 뽑아버리고 우리의 붉은 깃발로 바꿔 달도록 하라. 그리고 나서 진지만 잘 지키고 있으면 오늘 우리는 조군을 완전히 격멸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한신의 대군은 어느덧 정경 입구를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러자 진여는 지체 없이 군영을 활짝 열고 나와 한군에 대적했다. 많은 병사들과 지리적인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한신의 군대를 일순간에 포위해 버리자는 작전이었다.
한신은 즉시 퇴각명령을 내렸다. 급한 북소리와 함께 한군은 몸을 돌이켜 도망치기에 바빴다. 자신들의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한군의 모습을 보면서, 조군은 한껏 기세가 올랐다. 그들은 한군을 몰아쳤다. 강변에는 원래 한신의 밀계를 받은 조참(曹參) 등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망쳐 오는 한군들을 향하여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앞에는 강물이니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됐다. 만약 살고 싶다면 몸을 돌려 적을 베어라, 이것은 명령이다. 명령에 불복하는 자는 참수할 것이다!”
한군은 몸을 돌려 죽기를 각오하고 조군을 대적했다. 일당백의 기세로 응전하니, 조군은 더 추격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진여는 추격을 중단하고 진지로 퇴각하도록 명령했다. 그런데 진지로 가면서 보니 한군의 빨간 깃발이 이미 펄럭이고 있었다. 한군의 장수 부관(傅寬)이 병사들을 이끌고 기습을 한 것이었다. 황망히 그를 대적하면서 물러나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복병들이 습격해 왔다. 조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우왕 좌왕 하다가 많은 군사들을 잃고서 왔던 길로 퇴각하다가 진여는 죽고 조왕과 이좌거는 사로잡혔으며, 이로써 조나라는 영원히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