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상대방을 무너뜨리려고 할 때는 무기나 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방의 신하를 포섭하여 군주의 귀와 눈을 막아버리고 미인을 바쳐서 군주를 유혹하는 계책이다.”

여자가 끼어들어 일을 그르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로 인해 불화가 생겨 조직의 질서가 깨지기 때문이다.

‘미인계’는 ‘아름다운 여자를 이용하여 적을 무력화’하는 계책이며, 이 계책은 ‘육도(六韜)’라는 병법서에서 유래되었다.

막강한 병력과 충분한 군량미를 갖추고 있으며, 장수마저 총명하고 영리한 적을 만났다면, 절대로 정면으로 맞서지 말아야 한다. 잠시나마 가련한 척하며 적에게 복종하는 것이 상책이다.

복종할 때는 입으로만 떠들어서는 부족하다. 실제로 성실한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한다. 토지를 주어 적을 부강하게 하는 것은 여섯 나라가 서로 앞 다투어 진 나라에 땅을 주며 환심을 사려는 것과 같이 하책 가운데 하책이다. 금은보화나 비단을 주면 적이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신무기를 사서 우리에게 올 수도 있으니 이것도 졸책이다.

그러나 적에게 미인을 보내면, 적장의 몸을 쇠약하게 만들고 의지를 약화할 수 있다. 장수에게만 미인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없을 경우는 부대원들의 원한을 사게 될 것이니, 조직의 와해가 생길 수 있으므로 실로 훌륭한 계책이다.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 왕 부차에게 패한 뒤 부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인 서시와 진귀한 보석을 선물로 보냈다.

그 후 부차는 미인 서시에 빠져 정사는 돌보지 않고 놀고먹는 데만 정신을 쏟았다. 결국, 부차는 서시의 치마폭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허우적거리다가 구천에게 패하고 말았다. 물론 미인 서시도 다시 빼앗기게 되었다.

진나라 목공도 미인계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목공은 서쪽의 이민족인 융(戎)이 강대해지자, 위협을 느끼고 융의 왕실로 아름다운 무희 16명과 함께 솜씨 좋은 요리사를 보냈다.

융왕은 기뻐하며 밤낮으로 음주 가무를 즐기고 주색에 빠져들었다. 신하들이 진나라의 침략을 염려하여 충정 어린 간언을 하면 융왕은 도리어 화를 냈고, 심지어 신하들을 활로 쏘아 죽이기까지 했다.

얼마 후 진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융왕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다가 생포되고 말았다. 그는 침략당하기 직전까지도 진나라의 침략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고, 생포된 후에도 술기운에 정신이 몽롱하여 진나라가 침략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초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은 이름이 황헐(黃歇)로 일찍이 여러 나라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견문이 넓었던 그는 초나라 양왕(襄王)에게 발탁되어 재상이 되었다.

황헐은 세간에 명망도 높아 한때 그를 찾은 식객이 3천 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식객 중 이원(李園)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이언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다. 그녀는 지혜와 미모를 겸비한 보기 어려운 여인이었다.

어느 날, 이원은 누이를 황헐의 집으로 데려왔다. 황헐은 첫눈에 이언에게 빠져버렸다. 황헐은 이언과 술을 마셨고, 술기운을 틈타 이언을 차지하려 했으나, 이언이 자꾸 술을 권하는 바람에 잔뜩 취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그날 밤 황헐이 이언을 따르게 되었다. 다음 날, 황헐은 이원에게 백옥 두 쌍과 금 만 냥을 주었다.

황헐이 이언을 만난 지 3개월이 되었을 때, 이언은 임신을 했다. 이언은 아이처럼 품 안에 안겨 있는 황헐을 바라보며 말했다.

“초나라 왕은 아들이 없어서 언젠가 그가 죽고 나면 그의 동생들 중 한명이 왕위를 계승하겠지요. 그들은 당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재상 자리에 있었던 것이 눈에 거슬릴 태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처럼 이렇게 편히 지낼 수 없겠지요?”

“당신은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해왔구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말해 보시오.”

“왕에게는 뒤를 이을 자식이 없으니, 지금 저를 왕에게 보내십시오. 저는 이미 당신의 아이를 가졌으니, 이 아이가 왕위를 계승하면 당신은 황제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 날, 이언은 옷을 차려입고 궁으로 들어가 초나라 왕을 만났다. 왕은 그녀를 보자마자 빠져들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얼마 후, 왕은 이언이 임신한 것을 알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후에 이언은 아들을 낳았다.

당시 황헐의 식객 중에는 관찰력이 뛰어난 주영(朱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근래에 이원이 비밀리에 자객을 수소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는 분명 황헐을 겨냥한 것으로, 이원이 누이를 믿고 황헐의 권력을 빼앗으려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주영은 당장 황헐을 만나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황헐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후 초나라 왕이 죽자, 이언은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이원에게 알렸다. 이원은 황헐에게 궁으로 들어가 후사를 결정지으라고 했다.

그러나 황헐이 궁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죽고 말았다. 이원은 황헐이 모반을 일으키려 한 증거를 널리 알리고, 황헐의 머리를 성문에 걸어 두었다.

춘신군의 문객들은 모두 도망갔고, 이때부터 초나라는 이원의 것이 되었다. 이언과 그의 아들은 각각 태후와 왕이 되었고, 이원은 재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