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사람은 스스로 상처를 낼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상처를 입었다면 반드시 실제 상황으로 믿을 것이다. ‘고육계’는 먼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서, 그 피와 상처를 이용하여 적에게 접근해서 적을 속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한다.”
‘고육계’는 ‘내 몸을 상하게 하여 거짓을 진짜로 믿게 하는 전략’이다. 이것은 의심이 많은 상대방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이 상하는 것을 원치 않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만약 상대방이 상처를 입게 된다면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 점을 이용하여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고육계의 핵심이다.
정나라 무공(武公)은 호(胡) 나라를 치기 위해 자신의 딸을 호 나라 왕에게 시집보냈다. 그리고 호 나라를 쳐야 한다고 주장한 관기사(關其思)를 죽여, 호 나라의 경계를 늦 춘 다음 일거에 호 나라를 섬멸했다. 무공이 자기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큰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이 사례는 ‘고육계’를 사용한 가장 유명한 예가 되었다.
고육계를 활용할 때는 자기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기꺼이 희생을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고육계는 통상적으로 일부 전력을 소진 시키거나 상처를 입혀 아군 내부에 갈등과 분쟁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적을 함정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다. 적에게 협조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피 아를 막론하고 경계심이 최고조에 달한 전시에 어수룩한 행동으로 적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적이 보는 앞에서 전력의 중요한 일부분을 죽여 보이든가, 아니면 적어도 죽을 지경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보여야 믿는다. 사람은 모두가 자기 몸을 아끼니까 말이다.
고육계가 얼마나 쓰기 어려운 것인가 하면 이런 경우가 있다.
현대전에서 고지를 방어할 경우 진내사격(陣內射擊)이라는, 전술이 있다. 아군이 적의 공세에 밀리게 되면 끝내는 백병전을 치르게 되고 거기서도 당하지 못하면 고지를 완전히 잃게 되는데, 이때쯤이면 아군 병력은 적에게, 비해서 월등히 약하다.
퇴각하려 해도 적의 강력한 추격을 벗어날 수 없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군의 후방 지휘부에 요청하는 것이 바로 진내사격이다. 적과 아군이 뒤엉켜 있는 상황에서 그 위에 포탄을 퍼붓는다면 함께 상하기 마련인데, 적이 수적으로 우세하니 그 피해도 아군보다 크다는 것을 계산한 결과다.
뭐니 뭐니 해도 고육계의 극치는 춘추시대 요리와 오왕 합려의 이야기다. 오나라 왕 합려(闔閭)는 원래 왕이었던 요(僚)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 합려는 요의 아들 경기(慶忌)가 부친의 원수를 갚을까 봐 두려워서 밤낮으로 걱정했다. 당시 경기는 위(衛)나라에서 병사를 모집하고 말을 사들이는 등 세력을 확장하며, 오나라 왕위를 다시 빼앗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합려는 오자서(伍子胥)에게 경기를 제거할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일렀다. 오자서는 합려에게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용사 요리(要離)라는 사람을 추천했다. 그는 요리를 데리고 와서 합려에게 인사시켰다.
“대왕께서 제 오른팔을 자른 후, 제 아내를 죽이십시오. 그러면 경기가 절 믿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합려는 당황해하며 요리를 그냥 돌려보냈다.
며칠 후, 오나라 수도에 ‘합려는 왕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부도덕한 군주’라는 유언비어가 나돌기 시작했다. 합려는 유언비어의 출처를 알아내도록 명령했고, 이는 바로 요리가 퍼뜨린 소문임이 밝혀졌다. 합려는 요리와 그의 아내를 구속했다. 요리는 그 자리에서 합려에게 거칠게 욕을 해댔다. 합려는 요리를 도와서 소문을 퍼뜨린 공모자를 찾아내라고 명령을 내리고, 그의 오른팔을 잘라 부부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의 오른팔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며칠 후, 오자서는 몰래 요리를 탈출시켰다. 합려는 요리가 탈옥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그의 아내를 죽였다. 이 일은 아주 빠르게 주변에 있는 나라에 전해졌다.
요리는 위나라로 도망가서 경기를 만나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경기에게 자신의 팔을 자르고 아내마저 죽인 원수를 갚아 달라고 말했다.
경기는 그가 합려에게 심하게 당한 것을 보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요리를 받아들였다. 요리는 과연 경기에게 접근해서 끝없이 오나라를 치라고 설득했다. 요리가 말을 하지 않았어도, 경기는 항상 오나라를 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요리가 말을 해주니, 경기는 오랜 지기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리는 마침내 경기의 최측근이 되었다. 경기는 배를 타고 오나라로 출발했으며, 요리는 경기가 방심한 틈을 타 등 뒤에서 온 힘을 다해 단창으로 경기를 찔렀다.
경기는 마침내 죽고 말았다. 결국, 요리는 임무를 완성했으나 자신은 불구가 되고, 아내도 죽어 버렸기 때문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