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 상황에 사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죠."
광주 남구에 마련된 비상 구급함에 대한 위생·약품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통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방치하거나 구급함 자체를 이용할 수 없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일 오후 남구 봉선동 모 초·중학교 길가에 설치된 부엉이 안전 구급함 곳곳은 녹슬어 있었다. 안에는 흙먼지가 가득 쌓였다. 색바랜 비상약 포장지는 곰팡이가 슬었다.
구급함에 새겨진 '안전' 글귀가 무색할 만큼 사용 기한이 3개월을 훌쩍 넘긴 복용 약도 보였다. 구급함도 굳게 잠겨 있어 이용할 수 없었다.
박모(9)군은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쳐 구급함에서 약을 사용하려 했지만, 상태가 청결하지 않아 구급함을 열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봉선동 모 시장 안에 설치된 구급함도 사정은 비슷하다.
상인 이모(57·여)씨는 "차량이 구급함을 받아 구급함 일부가 파손됐다. 방치된 지 1년이 지났다. 관리가 안 되고 약품 상태도 좋지 않아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구급함은 주민이 자주 오가는 상가 외벽에 설치됐지만, 미관을 해친다는 민원과 건물주 변경 문제로 실내로 옮겨졌다.
남구는 지난 2017년 부엉이 안심타운 조성사업 일환으로 사업비 1300만 원을 투입해 민간 안전 단체에 사업을 위탁, 부상·위급 상황 시 약품을 사용하도록 관내에 구급함 10개를 설치했다.
다만, 1년 단기 사업에 그치면서 구급함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상태다.
건물 주인·인근 상가 상인이 구급함 관리를 부탁받았지만, 관리 의무가 없다 보니 구급 약품 도난 사례도 나왔다.
약품이 사라져도 새 약품을 채워 넣거나 도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교체가 필요한 약품도 방치됐다.
관리가 어려워진 구급함은 하나둘씩 문이 잠겼다. 구급함 10곳 중 상당수가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주민 한모(42)씨는 "꾸준한 관리로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안전단체 관계자는 "주민 안전을 위한다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1년 예산만으로는 관리가 어렵다. 중·장기적 사업이어야 관리를 지속할 수 있다"고 전했다.
남구 관계자는 22일 "현장 점검을 해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확인하고, 관련 부서와 개선 방안을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남구는 범죄 노출 시 지정 상점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해당 사업을 벌여 2017년 행정안전부 주관 안전문화 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올해 해당 사업으로 '혁신 챔피언 인증패'를 수상한 바 있다.
/한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