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강진 남포마을에서 보내는 편지
  • 호남매일
  • 등록 2020-12-29 00:00:00
기사수정

/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인정이 그리운 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을 찾다보니 강진 갈대숲으로 발길을 옮겼다. 간식을 준비하고 차와 커피를 내리니 아침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날이 따뜻하다. 추울까 걱정하며 입었던 외투가 버겁다.


강진 갈대밭에 인적이 드물다. 갈대밭 쪽으로 길을 옮기니 조류독감으로 인해 통제가 되어 언덕을 따라 걷는다. 갈대는 울지 않았다. 다만 바람에 흔들리면서 사브작거린다. 푸른 하늘에 희뿌연하게 날리는 것은 눈발인가? 하늘을 자꾸만 바라본다. 갈대의 이파리들이 점이 되어 갯벌속으로 소멸되어간다.


간간히 날리는 갈대숲 길에 국화꽃이 꽃을 피워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다. 한해의 자락이 마무리 되는 시기에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 시장가고, 음식 먹고,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을 견디며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간다.


강진 남포마을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가는 길목에 ‘애절양’ 이라는 정약용이 지은 시를 만난다.


국역 다산시문집(1994)의 내용을 보면 ‘애절양’은 조선후기 군적에 오른 사람은 병역을 대신하여 군포(軍布)를 내게 되는데, 관리들이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기 위해, 이미 죽은 사람과 갓난아이의 이름을 군적에 올려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군포를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기막힌 현실을 노래한 것이다. 소절마다 한 맺힌 시대를 살았던 여인의 곡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다.


갈대숲에서 들려오는 사브작 소리가 여인의 노래처럼 들리는 듯하다. 힘든 시대를 살다간 여인의 울음소리를 삭이며 길을 걷는다. 시대마다 힘든 삶을 겪은 여인을 생각하니 어머님 얼굴이 떠오른다.


코로나19 시대에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어머님께 강진 남포마을에서 편지를 쓴다.


“어머님, 당신의 겨울에도 시린 바람이 부는지요. 우리는 코로나 19로 인해 예기치 못한 전염병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는 견디고 버티다 보니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뉴노멀의 시대가 되어 일상이 되었던 삶은 잠시 멈추었습니다. 학교는 항상 가야만 하는 곳이었는데 쉬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운동장에서 뛰어 놀 수 없습니다. 동짓날과 연말이면 음식을 준비해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던 나눔도 접어야 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생활을 하며, 해년마다 성탄절 모임에 빨간 스웨터를 입고 나타나신 스승도 뵙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유난히 빨간 스웨터 입은 사람만 봐도 설렙니다. 당분간 보고 싶은 사람은 마음속에 담아 두고 가족과 함께 코로나, 19를 슬기롭게 보냅니다.


강진만 갈대 숲 언덕길을 걸으면서 내년 봄 연초록물결이 출렁이면 온라인 접속을 마무리하고 사람과 접촉하는 날이 많았으면 합니다.


갈대 숲길에서 신경림 시인의 ‘갈대’ 시가 떠오릅니다. ‘언제부터인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조용한 울음일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언제 한번이라도/ 나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지나온 삶을 뒤적여 본적이 있었던가?/ 외로워서 내가 외로운 나에게/ 눈물을 흘려주었던 일이 그 언제 있었던가/ 때로 조용한 갈대가 되어/ 울어보고 싶은 것인 것을…’


‘갈대’ 시를 낭송하며 길을 걷습니다. 강진 남포마을에서 시작된 걸음은 철새 도래지를 지나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향합니다. 초의선사와 다산이 만났던 백련사 앞마당에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가는 길에 동백꽃 가로수가 길동무를 해 줍니다. 제주에는 애기 동백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는데 강진바람은 동백꽃잎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나 봅니다. 백련사 앞마당 햇살이 먼저 당도한 곳에 몇 송이의 동백이 붉게 미소를 짓습니다. 어머님 계신 그곳에도 환한 햇살이 가득하길 바라며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말 할 곳이 없는 길에서 어머님에게 편지를 부쳐본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은 어설픈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겠지. 경자년 쥐의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쥐의 해 쥐 죽은 듯이 연말을 보내자.” 코로나 19, 캠페인을 본다.


강진 남포마을에서 신축년 소의 해에는 코로나 19가 물러가기를 빌어본다.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문화 인기기사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