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3분기 역대 가장 많은 빚을 낸 가계가 씀씀이를 줄이고 주식 투자 등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의 주식자금 운용 규모는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09년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3분기 자금순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여윳돈을 나타내는 순자금운용액은 30조7000억원으로 1년 전(16조6000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순자금운용 규모가 늘었다는건 예금이나 보험, 주식, 펀드 투자 등으로 굴린 돈(자금운용액)이 차입금 등 빌린 돈(자금조달액)보다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조달액이 운용액보다 많으면 순자금조달액으로 기록된다.
지난해 3분기 가계의 순자금운용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은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 정부의 3·4차 추경 집행으로 가계 이전소득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됐다. 3분기 가계처분가능소득은 월평균 426만1000원으로 전년동기(412만8000원)보다 13만3000원(3.2%) 증가했으나 민간최종소비지출은 233조9000억원에서 226조2000억원으로 7조7000억원(3.3%) 감소했다.
가계는 주식투자 등으로 자금을 굴렸다. 가계의 자금운용 규모는 83조8000억원으로 1년 전(40조6000억원)보다 43조2000억원 급증했다. 금융기관 예치금이 24조5000억원으로 전년동기(27조3000억원)보다 줄었는데, 주식과 펀드 등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규모가 사상 최대치인 22조5000억원으로 불어난 영향이다. 해외주식 투자 규모까지 포함하면 주식운용 규모가 30조7000억원에 달했다.
빌린 돈인 자금조달액도 53조2000억원으로 1년 전(24조원)보다 29조2000억원 증가했다.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내 집 마련과 주식 투자 등을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 투자)' 열풍으로 증가폭이 확대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주택 관련 자금과 주식 투자자금, 생계자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장기 저축성 예금 부문의 운용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자금조달액 중 일부가 주식 투자자금 등으로 흘러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비금융법인)은 순자금조달액이 14조9000억원으로 전년동기(-17조8000억원)보다 축소됐다. 코로나19에 따른 운전자금과 시설자금 수요 확대 등의 영향으로 자금조달액이 38조7000억원으로 1년 전(26조5000억원)보다 증가했지만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자금운용액이 8조7000억원에서 23조8000억원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재정지출을 늘린 정부의 여윳돈은 쪼그라들었다. 정부의 순자금운용액은 8조8000억원으로 전년동기(16조4000억원)에 비해 반토막났다. 3·4차 추경 집행으로 정부 지출이 크게 증가한 영향이다.
지난해 3분기말 가계의 금융자산에서 금융부채를 뺀 순금융자산은 2333조1000억원으로 전분기대비 88조2000억원 늘었다. 가계의 금융자산/금융부채 배율은 2.17배로 2017년 2분기(2.19배) 이후 가장 높았다. 가계뿐 아니라 기업과 정부 등을 포함한 국내 순금융자산은 석달새 189조5000억원 늘어난 3174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