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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死間)
  • 호남매일
  • 등록 2021-01-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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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을 무릅쓰는 간첩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손자병법’ 「용간편」에서 말하는 ‘5간’의 하나다.


사간(死間)은 이편에서 일부러 거짓 사건을 꾸미고 그것을 아군의 간첩으로 하여 적에게 전하게 하거나 누설하게 하는 간첩 작전이다. 대체로 피살되게 마련이므로 사간이라고 한다.


반간을 활용하면 우리가 어떤 거짓 정보를 적에게 알리는 것이 가장 적절한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거짓 사건을 저지르고 사간이 그것을 적에게 알릴 수 있는 것이다.


손자의 해석에 따르면 이른바 ‘사간’은 조작된 사건을 적 진영에 잠입해 있던 우리 쪽 간첩에게 전달함으로써 적을 속여 함정에 걸려들게 하는데, 일단 사실이 폭로되면 죽음을 면키 어렵다. 그래서 ‘사간’이라 부른다. 고대 전쟁에서 ‘사간’을 운용한 예는 적지 않았다.


서주에서 도망 나온 궁타(宮他)는 동주로 가서 비밀 정보를 모두 동주에게 털어놓았다. 동주는 크게 기뻐했고, 서주는 크게 화를 냈다.


이때 서주의 풍단(馮旦)이 임금에게 계책을 올렸다. “제가 그 간첩을 죽여 버리겠습니다.”


서주 임금은 풍단에게 금 30근을 주었다. 풍단은 사람을 시켜 금과 편지를 간접적으로 궁타에게 전하게 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궁타에게 말하노라. 공작이 이루어 질만 하면 힘써 진행하라. 만약 힘들거든 빨리 도망쳐 되돌아오라. 시간이 길어 누설되겠거든 자살하라’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을 시켜 동주의 문지기에게 말하게 했다.


“오늘 저녁에 간교하고 나쁜 놈이 들어올 것이오.”


문지기가 보니 정말 밤에 편지를 들고 오는 자가 있어, 잡아다 동주 임금에게 끌고 갔다.


임금은 궁타가 간첩이라 여기고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다.


‘사간’의 형식은 하나로는 부족하다.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기민하게 활용해야 한다.


손자가 말한 뜻으로 보면 ‘사간’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거나, 배반하고 도망간 자를 처치하는 책략이다.


도주한 배신자에 대해서는 그가 적에게 알려줄 정보에 따라 적이 움직일 것을 예상하여 원래 부서를 조정하거나 상황을 변화시켜 적을 유인하고, 나아가서는 적의 손으로 배반자마저 죽이게 한다.


이는 ‘사간’을 운용할 때 대단히 두드러진 수법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여건을 조성하여 ‘사간’을 자기 쪽에서 만들어낼 수도 있다.


손자 이후로 군사 전문가들은 ‘사간’에 대한 해설과 용법에 대해 다음 두 가지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첫째 내 쪽의 약점을 알고 있는 배반자가 정보와 작전 계획을 적의 내부에 흘리면, 때맞추어 내 쪽의 약점을 바꾸거나 거짓으로 약점을 덮어 적으로 하여금 정보를 제공한 자를 의심하게 하거나 나아가서는 그 배반자를 죽이게까지 한다.


섬서성 인주(麟州)는 황하 밖에 있는 서하(西夏)를 통제하는 요충지다. 그런데 성 안에 우물이 없었다. 송나라 인종(仁宗) 경력(慶歷) 연간(1041~1048), 서하 사람 한 명이 국주 이원호(李元昊)에게 인주에는 우물이 없어 보름 정도만 포위하면 수비군과 거주민들이 모두 목말라 죽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원호는 즉시 출병하여 인주를 포위했다. 며칠 지나자 성안에 물이 메말라 대단히 위급한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때 송 진영의 한 군사가 다음과 같은 꾀를 냈다.


“적이 포위를 풀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 성안에 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도랑의 진흙을 파서 성의 높은 곳의 풀 위에다 발라 성안에 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인주의, 대장은 이 꾀를 받아들였다. 이원호는 풀 위에 발린 흙탕물을 보고는 급히 정보를 제공한 서하 사람을 불러 다그쳤다. “성 안에 물이 없다더니 어째서 저런 흙탕물이 있지?”


이원호는 즉시 서하 사람을 죽여 버리고 철수했다. 630년(당 태종 정관 4년), 당 태종은 이정(李靖)을 보내 돌궐을 공격하게 했다. 돌궐왕 힐리가한은 패배하자 강화를 요구했다. 당 태종은 당검(唐儉) 등을 보내 힐리가한의 항복을 위로하게 했다. 힐리가한은 표면적으로는 복종했지만 내심으로는 불쾌해 하고 있었다.


이때 이정은 여러 장수들에게 힐리가한이 비록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아직 10만 군사를 보유하고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고 했다.


“만약 그들을 대 사막 이북으로 도망가게 하면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쌍방이 담판을 짓고 있으니 힐리가한은 틀림없이 경계를 늦출 것이고, 그 틈을 타서 우리는 정예 기병으로 그들을 공격한다. 그들이 준비를 못 할 때 공격하면 적의 생산력을 소모시킬 수 있으니 이번이야말로 정말 만나기 어려운 기회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우리 사신들이 아직 그쪽에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정은 ‘기회는 놓칠 수 없고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며 ‘당검 등 몇 사람을 희생한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나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한신이 괴통의 계략을 채용하여 일거에 제나라를 격파한 이치라고 했다. 당군은 돌궐 진영으로 진격해 돌궐을 대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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