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킨 호남의병의 대명사로 인정받는 건재(健齋) 김천일 선생(1537~1593년)의 뜻을 기리는 나주 정렬사비(旌烈祠碑) 복원 길이 열리게 됐다.
25일 전남 나주문화원에 따르면 일본 교토대(京都大) 도서관에서 조선후기인 1750년께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나주 ‘정렬사비(旌烈祠碑) 탁본첩’이 발견돼 나주 지역 역사문화 재조명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금석집첩(金石集帖)’이라는 책에 실린 탁본첩은 나주문화원이 나주 지역의 금석문 탁본 조사를 통해 국역 해설집을 발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일본 현지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사진 자료를 확보했다.
이 책자가 일본으로 건너 간 정확한 사유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2년께 약탈된 수많은 문화재와 함께 불법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승전의 역사를 간직하고도 다시 일본에 빼앗긴 탁본첩(사진)은 1626년 세워진 이후 일부 비문 내용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훼손된 정렬사비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정렬사비 탁본첩은 천자문 순으로는 ‘能(능)’자편(174번째)이고 국사편찬위원회 조사 목록상으로는 160첩에 다섯 번째로 실려 있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제목은 ‘김건재정렬사비(金健齋旌烈祠碑)’이다.
모두 13면인데 첫 면은 6줄이고 2면부터는 7줄로 편찬돼 있다. 첫 면에는 제액(題額)인 ‘정렬사비’를 1행에 실고 이어 3행 비제와 본문을 편집해 실었다.
정렬사비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인 호남의병의 중심인물에 대한 역사 기록으로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천일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26년(인조 4년) 나주 유림과 전라도 관찰사 민성징(閔聖徵), 나주목사 유여각(柳汝恪), 조홍립(曹弘立)이 김천일 선생의 사우에 함께 세웠다.
비제에는 김천일 선생을 명기한 ‘倡義使金公旌烈祠碑銘(의사 김공 정열사 비명)’이라는 글씨가 각인돼 있다. /나주=조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