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박두순 作
나무줄기를 따라가 보면
상처 없는 나무가 없다
그렇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눈보라에 시달리지 않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흔들린 만큼
시달린 만큼
높이와 깊이를 가지는 상처
상처를 믿고
맘놓고 새들이 집을 짓는다
상처를 믿고
꽃들이 밝게 마을을 이룬다
큰 상처일수록
큰 안식처가 된다
<함께 읽기> 혹시 이 시를 읽으며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를 떠올린 분들이 한둘 아닐 게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높이 서 있는 굳건한 나무일수록 뿌리가 깊다. 그래서 웬만한 바람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높이로, 그 뿌리로 자라기까지 그냥 시간만 흘려보낸 건 아니다. 때론 홍수와 태풍을 맞으며, 때론 강추위와 눈보라에 상처를 남기며 가지와 잎사귀를 다 버리는 위기도 겪어야만 했다.
“상처를 믿고 / 맘놓고 새들이 집을 짓는다” 새들이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만들 때는 가능한 큰 나무를 찾는다고 한다. 상처를 입고 자란 큰 나무일수록 가지가 잘 부러지지 않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족함 없이 곱게 자란 사람보다 시련과 역경을 겪어낸 사람이 더 인간적이고, 기대고픈 마음이 일어난다.
“흔들린 만큼 / 시달린 만큼 / 높이와 깊이를 가지는 상처” 바람에 많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리려 한다. 그래야 흔들림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위기가 올 때 그 아픔을 많이 겪어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극복의 결과 면에서는 훨씬 낫다고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큰 상처일수록 / 큰 안식처가 된다” 이런 시구 하나만 머리에 새겨 두어도 코로나19로 찌든 삶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게다. 내면적 깊이가 더해 갈수록 보이는 외면적 높이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갈수록 힘들다. "큰 상처일수록 / 큰 안식처가 된다” 하지 않는가.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혹 다음 올지도 모를 난관을 쉬 이겨낼 수 있을게다. 이웃의 상처를 보듬어줄 줄 아는 마음이 꼭 필요한 때가 코로나 정국 바로 지금이다.
박두순 시인(1950년생)
경북 봉화 출신으로 1977년 '아동문예'를 통해 동시인으로, 이후 '자유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