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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기다리는 순천만 갈밭누이
  • 호남매일
  • 등록 2021-02-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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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용 수 시인


동심이 설레는 음력설이 다가온다.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뛰었던 어린설날은 오간데 없고 냉기만이 휘돈다. 땋은 머리와 낭자머리 찰랑이며 곱디곱게 자라왔던 갈밭누이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동천끝자락을 따라서 도사와 대대마을 지나 갈대숲이 우거진 개천 길에는 지금도 갈대누이 삶이 널브러져 있다.


“정자야! 순이야! 갯것 하러가자.”


바다에 나가서 게와 고동 그리고 꼬막, 낙지 등 갯것을 잡아 가족생계에 보탬을 주었던 갯벌누이의 유년시절이 그려진다.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바닷물이 빠진 갯벌 밭을 누벼야했다. 자신의 학비와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고사리 손을 놀리지 않았었다.


옛날의 순천만은 여성들의 유일한 일터였다. 갈밭누이들은 널따란 갯벌 밭과 갈대밭을 헤매면서 갯것을 잡는 일이 다반사였다. 게다가 틈나는 대로 갈대를 엮어 발을 만드는 도우미 일을 했었다. 당시의 가난을 이겨내려는 갈밭누이들의 아픔과 슬픔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갈목비를 만들고 갯것을 해왔다. 자신의 학비는 물론 오라비학비까지 충당했었던 갯벌누이는 어디로 갔을까? 갈목비 만들어 5일장에 내다 팔았었던 순례와 정자는 지금쯤 무엇을 할까? 까마득한 옛날시계가 돌고 돌아갈 뿐이다.


음력설은 다가오는데, 설빔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미풍양속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고풍을 따져 무엇하리까마는 어딘가 모른 서운함이 드는 세상사다. 새 옷을 입고, 새 신발을 신고 마음껏 뛰어놀았었던 설날이 그리워지는 현실이다.


순천만 갈밭위로 가오리연과 방패연을 띄우며 동심을 노닐었던 설날오라비들과 갈밭누이들도 보고 싶다. 오라비들의 짓궂은 장난질도 지금은 새롭게 느껴진다. 지금은 철새 떼가 내리고 날아오르는 철새도래구역으로 변했지만 당시에는 오라비들의 연이 오르내리는 장소였었다.


성묘와 세배를 마친 아이들은 순천만 갈대밭으로 모여든다. 어쩌면 당시의 갈밭은 아이들의 천국이었을지도 모른다. 숨바꼭질과 연날리기를 비롯해 고무줄놀이, 그네타기 등 각종 놀이를 하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었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품에 안겨서 상상의 나래를 끝없이 펼쳤으며, 온몸에 자연의 기를 충만 시키는 장소였다. 갈밭누이들은 갈밭오라비를, 갈밭오라비는 갈밭누이를 서로서로가 그리워하고 보고파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증이 앞선다.


세찬바람이 갈밭을 몰아친다. 순천만 해수로가 얼어붙고 수도관이 얼어터지는 강추위가 지속되고 있다. 영하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도 순천만 갈밭을 거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옛 추억을 더듬으며 건강걸음을 걷고 있다. 대대포구의 어촌마을과 순천만 흔적을 되새김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갈밭누이가 잡다 놓쳐버린 낙지 굴을 연상하고, 꽃게 큰 발에 손가락을 물려 아픔을 호소했던 이야기이삭을 줍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순천만은 삶의 정화조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갈대와 갯벌은 사람들의 생활오폐수와 생활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미터이상의 뿌리를 지닌 갈대는 오폐수를 거르는 정화식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정공기를 생산하는 산소저장고나 다름없다. 게다가 봄부터 돋아나는 청갈대는 희망의 여신으로 정신적 안정감을 준다. 또 가을이면 갈색으로 우거져 가을정서를 심어준다. 겨울이면 백설정서까지 짊어진 운치를 보여주고 있다. 사시사철 변화무쌍한 갈대정서는 마음정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갯벌역시 황토와 마사토를 거르고 걸러서 진흙속의 정화조다. 바닷물의 찌꺼기로 알려지고 있는 갯벌이 되기까지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찌꺼기도 쌓였을 것이다. 염분활동과 퇴적작용은 물론 갯벌생성까지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미생물의 활동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순천만의 음력설은 아직도 선명하다. 퇴색되고 사라져가는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려는 갯벌누이의 모습에서 그때 그날을 새겨본다. 설날을 그려본다. 새 옷을 입고, 새 신발을 신고, 훌쩍 뛰어보자. 머리가 하늘까지 닿도록. . .


지난 토요일이었다. 도사마을에 살고 있는 배기현 형님 집을 찾았다. 평소 존중하는 형님과 형수님은 우리부부를 반갑게 맞이했다. 차를 마신 후, 순천만 갈밭을 걷기로 했다. 두 부부가 함께 거니는 겨울갈밭은 낭만분위기였다. 철새 때가 먹이를 찾고 갈대가 춤을 추는 풍광 속에서 두 부부의 이야기는 정겨움이었다. 학창시절의 잊을 수 없는 빛바랜 추억들과 옛날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3시간을 걸으면서도 끊이지 않는 추억담은 또 다른 추억을 쌓고 있었다. 형수님이 끓여온 떡국역시 갈밭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그날의 시상이 떠올랐던 “순천만 갯벌누이 얼레빗”을 게재해 볼까 싶다.


갈색머릿결 곱디곱게 빗고서


갯벌 밭 누비다가 갈대밭 누비던


순천만 갈밭누이야!


정수리가르마 타고


낭자머리빗질 하고


얼레빗 뒷머리에 꽂은


그때 그 모습 淨化槽란다


갯벌이 그리워


갈밭이 보고파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도장 찍었던


그 언약 그 맹세 되살아오는데


청순머릿결 가지런히 빗고서


해수로 떠돌다가 선창가 휘돌던


순천만 갈대누이야!


때 묻은 머리 빗고


땋은 머리빗질하고


얼레빗 옆머리에 꽂은


어린 그 모습 淨化槽란다


갯벌이 그리워


갈밭이 보고파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도장 찍었던


그 언약 그 맹세 되살아오는데


대대용머리 보고보고 또 보고


별 달빛 머무는 데크길 거닐던


순천만 갯벌누이야!


밤하늘을 빗겨대고


별무더기 빗질하고


반달빗 앞머리에 꽂은


익은 그 모습 淨化槽란다


갯벌이 그리워


갈밭이 보고파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도장 찍었던


그 언약 그 맹세 되살아오는데


(필자의 '순천만 갈밭누이 얼레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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