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봄빛이 완연하다. 엊그제가 입춘이라더니 따스한 햇살에 기지개를 펴게 한다. 지인의 집에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가랑코에 화분 선물을 받았다. 꽃집에 가서 몇 개의 화분을 더 골랐다. 프리뮬러, 시크라멘, 제라늄 화분을 이리저리 배치해 보았더니 거실이 환해졌다.
J에게 꽃으로 환해진 거실을 톡으로 보냈다. J와 함께 화원에 가서 화분 몇 개를 골랐다. 예쁜 꽃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떠 있다. 봄맞이하는 J의 목소리를 듣는다. 소담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J와 꽃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2월의 들판을 바라본다. 엷은 갈색으로 뒤덮인 곳에서 이제 갓 세상으로 나온 푸른 식물을 바라본다.
하나, 둘 피어나는 새싹이 변화의 시기를 알려준다. 제일 먼저 봄 인사를 하는 벼룩나물, 광대나물, 까치꽃이 연 보랏빛 인사를 한다.
J는 “2월은 나눔의 계절이야.” 혼잣말을 한다. 명절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시기에 손수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명절이 가까워지자 J가 선택한 음식은 식혜다. 식혜는 찹쌀을 약간 넣고 지은 멥쌀밥에 엿기름을 우려낸 물을 부어서 삭힌 한국의 전통음료다.
J는 여행을 떠나면 5일장을 지나치는 법이 없다. 엿기름을 파는 곳을 기웃거린다.
몇 해 전 가을 하동 최참판댁 마을 앞에서 손주 만드신 재료를 팔고 계시는 할머니와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며 고른 엿기름으로 만든 식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J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식혜 만든다. 재료는 엿기름, 설탕, 멥쌀과 찹쌀이 주재료다. 식혜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엿기름이다.
첫째, 엿기름을 자루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당금 질을 하여 엿기름물을 받는다. 둘째, 맑은 물이 나오면 체에 걸러진 찌꺼기를 버린다. 첫물을 받고 난 후 다시 물을 부어 엿기름물 받기를 3회 반복한다.
이 물을 다시 체에 거른 뒤 1시간 이상 가라앉혀 맑은 윗물만 따라 식혜를 만든다. 셋째, 따라낸 맑은 윗물은 미지근하게 데워 보온밥솥에 넣고 삭힌다. 보온밥솥은 식혜 만들기에 좋은 가전제품이다. 예전에는 부엌에서 약한 불을 오랫동안 땠다. 넷째, 찹쌀을 약간 놓은 밥은 3시간이상 불려 찜통에 베 보자기를 깔고 찐다. 하는 중에 물을 뿌려가며 위아래를 섞는다. 충분히 밥이 쪄지면 식혜 물을 밥통에 넣고 설탕과 함께 쌀을 넣어 뚜껑을 덮고 쌀알이 떠오를 때까지 5시간 정도 삭힌다. 이때 밥은 평소보다 고실 거리게 하면 더 좋다. 다섯째, 떠오른 밥알은 따로 건져 찬물에 씻은 뒤 꼭 짜두고, 나머지 물은 남은 설탕과 함께 냄비에 넣고 팔팔 끓인다.
마지막으로 식혜를 충분히 식힌 맑은 식혜 물과 밥알을 풀어 넣어 잣을 올려 먹으며 고급 진 식혜를 만난다. 식혜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엿기름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손맛이다.
J에게 연락이 왔다. “식혜 만들었어.” 몇 시간을 두고 만든 정성을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 가득이다. 정이 많은 J는 넉넉하게 식혜를 건넨다. 식혜 한잔에 정성과 깊은 정을 느낀다. 올해는 단감을 넣어 감 식혜도 만들었다. 두 병의 넉넉한 식혜가 우리 집으로 왔다.
식혜를 만드는 방법은 약간은 차이가 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호박을 넣어 달콤함 단 호박 식혜, 생강을 넣어 목을 시원하게 해 주는 식혜는 무엇보다 주재료가 보리다. 차가운 날씨와 햇살을 머금도록 엿기름을 잘 삭히는 것이 과정이 더 중요하다.
식혜의 맛을 좋아하는 개인의 취향도 차이가 있다.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K는 밥알을 좋아하고, E는 맑은 물을 좋아한다. 필자는 텁텁한 단맛이 나는 식혜를 좋아한다. 엿기름의 걸죽한 단맛이 입안에 감도는 식혜다. J의 식혜는 맑아서 좋다. 맑은 물보다는 엿기름가루까지 먹는 식혜 맛이 일품이다.
식혜를 만들 때 요즘은 다양한 재료를 넣는다. 호박식혜, 감 식혜, 단맛이 나는 재료를 넣은 식혜는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엄마가 만든 엿기름이 듬뿍 들어간 걸죽한 식혜 맛이 그리 울 때면 J의 식혜가 우리 집으로 배달이 와 마음까지 위로해 준다. 주재료인 엿기름의 텁텁한 단맛이 입안에 감돌아 J의 식혜를 먹으며 엄마의 식혜 맛을 떠올려 준다.
J가 보내준 식혜를 예쁜 그릇에 따르고 아껴 두었던 잣을 몇 개 띄워보았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인절미를 구워 곶감과 함께 한상을 차려 마셔본다. 입안에 감도는 단맛이 좋다. 20대에는 탄산음료를 그렇게 좋아했다. 그런데 무심한 세월과 살다 보니 옛것이 그리워진다.
J가 정성스럽게 만든 식혜 한잔에 진한 정을 만난다. 정성이 깃든 음식으로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J의 명절에도 환한 기운이 가득 들길 바란다. 엿기름을 삭히며 식혜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마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