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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한 그릇 먹으며
  • 호남매일
  • 등록 2021-02-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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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다 같이 모여 앉아 떡국 한 그릇 먹으며 좋을 텐데…”, 명절날 아침 아버지는 시린 눈으로 떡국을 드시며 혼잣말을 하셨다. 큰 오빠는 ‘일 없이 또 한 살을 먹었네요.’ 아버지의 말씀에 답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생전에 가장 슬픈 명절날이었다.


100세에 가까우신 아버지는 사회적 거리에 대해 알지만 왜 가족을 볼 수 없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나 보시다. 큰 오빠에 의하면 명절 전날 서울에 사는 작은 오빠가 다녀갔다고 한다. 이른 아침 떡국을 먹고 떠난 자리에 수원에 사는 막내가 도착했다.


아버지가 시린 눈으로 드신 떡국 이야기를 해본다. 떡국은 설날에 먹는 음식으로 농경문화를 이어온 우리의 삶에 의미가 크다.


떡국은 ‘한국세시 풍속사전’에 의하면 긴 가래떡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소망의 상징이며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자른 건 재물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떡국을 ‘첨세병’이라 했다고 한다. 첨(添)은 더하다, 세(歲)는 세월(나이), 병(餠)은 떡이라고 한다.


세월을 더하고 병은 없애고 엽전을 상징하는 모양의 떡국을 먹는다는 것은 한해 무탈하며 돈을 잘 벌어 가족 모두가 잘 지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새해 아침이면 가족과 모여 덕담을 나누며 떡국을 먹는 것은 첨세병(添歲餠)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백석의 시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 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계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여우난 곬족’ 시의 일부분이다.


백석의 ‘여우난 곬족’ 시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명절날 친지들이 모여 부적거리는 모습은 90년대까지 만났던 명절 문화다. 백석의 시를 읽으며 코로나 19로 잃어버린 명절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마을과 마을이 잇는 시골은 명절이 되면 떡 방앗간부터 바빠진다.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의 시는 먹는 것을 빼 놓을 수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백석의 시에서 음식은 삶과 함께 하는 것이다. 명절에는 역시 음식이 최고다. 명절에 최고의 별미는 떡이다.


명절이면 떡이 최고의 별미다. 쑥 인절미, 콩가루가 묻힌 떡은 지방마다 떡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쌀을 이용해서 만든 음식이다. 북에서는 조랭이 떡국을 먹지만 남에서는 가래떡을 쓴 떡국을 먹었다. 집마다 전통에 따라 만두를 빚어 떡국에 넣어 먹는 경우도 있다.


설날 아침 아버지는 떡국을 자식들과 함께 먹을 수 없음에 눈물을 훔치셨나보다. 100세가 가까워지는 아버지의 삶을 다 알 수 없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충분히 전달되었다. 친정엄마 성묘 가는 길에 아버지 얼굴을 뵙지 못하고 돌아섰다. 정월 대보름에나 뵐까 싶다.


친정엄마가 계신 산소에 논둑길을 따라 걷는다. 아이와 걸음을 맞추며 걸어가는 논둑길은 어릴 적 친정엄마가 걸었던 그 길이다.


큰오빠, 작은오빠, 언니, 나, 동생이 따라 걸었던 그 길을 남편, 딸아이, 내가 걷는다.


성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산강 방천길을 걷는다. 강에는 왜가리, 백조, 청둥오리가 자유롭게 놀고 있다. 영산강 상류에 저렇게 많은 새들이 살고 있다니 모처럼 만에 만나는 새들의 군무에 발길을 멈춘다.


영산강 상류 새들의 모습은 평화롭다, 물을 차고 비상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무심한 세월도 강산은 변하게 하나보다 강은 그대로인데 삶의 형태가 달라진 강을 바라본다. 어린 시절 그 강에는 새들보다 사람이 많았다. 삶이 떠난 자리에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었다.


단란한 새들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본다.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에도 함께 물장구를 치며 노는 새들이 부럽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래본다.


내년에는 눈 시린 떡국이 아닌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서로에게 덕담을 해 주는 명절을 맞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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