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 고전 연구가
이 책략은 정치·군사·경제 등 여러 영역에서 지금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훗날 사람들은 ‘이간책’을 이용해서 군주를 이간시키고, 친척을 이간시키고, 유능한 자를 이간시키고, 시종을 이간시키고, 유세객들을 이간시키고, 우호 관계에 있는 나라들을 이간시켰다. 이것들은 모두 적 내부 진영의 모순을 이용하여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게 만들어 힘을 소모하게 만든다.
항우가 형양(滎陽)에서 유방을 포위했을 때, 유방은 진평의 계략에 따라 사람을 시켜 “항왕의 부하 장수인 종리매(鐘離昧)·용차(龍且)·주은(周殷)이 한 유방에게 투항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항우는 그들을 의심했다. 이렇게 상당 기간 대치하다가 유방은 항우에게 화친을 청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항우는 사신을 한에 보냈다. 사신을 보자 진평은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부(亞父.-항우의 중요한 정책 브레인의 하나인 범증을 말한다)의 사신인 줄 알았더니, 항왕의 사신이었군!”
이것은 물론 항우와 범증 사이를 이간시키려는 목적에서 나온 의도적인 말이었다.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 사신은 이 말을 항우에게 보고했고, 항우는 범증을 크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부 범증은 속히 형양성을 공격하자고 재촉했으나 범증을 믿지 못하는 항우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항우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안 범증은 크게 화를 냈다. “천하의 대사는 정해져 있거늘, 군왕이 마음대로 하겠다면 차라리 해골이 되어 돌아가게 해달라!”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항우에게 요청했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악성 종기 때문에 죽었다.
주나라 난왕 36년인 기원전 279년, 연의 명장 악의(樂毅)는 연(燕)·진(秦)·위(魏)·한(韓)·조(趙)의 연합군을 이끌고 제나라 정벌에 나섰다.
제나라 명장 전단(田單)은 즉묵(卽墨)에서 포위당해 위급한 상황에 몰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악의를 신뢰하던 연나라 소왕(昭王)이 죽고, 악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혜왕(惠王)이 즉위하는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전단은 간첩을 풀어 악의가 무엄하게도 스스로 왕으로 자처하고 다닌다는 유언비어를 살포시켜, 혜왕과 악의 사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혜왕은 악의를 소환하고 그 자리에 기겁(騎劫)을 앉혔다.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악의는 연으로 가지 않고 조 나라로 도망갔다.
연의 군대는 이 때문에 서로 불화하게 되었고, 전단은 쇠꼬리에 불을 붙여 적진으로 돌진하게 하는 ‘화우진(火牛陳)’으로 연을 대파했다.
이른바 ‘첩보전’은 동서고금을 통해 여러, 책략가들이 중시한 것이었다.
‘백전기법’ 「간전 間戰」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무릇 적을 정벌하려면 먼저 첩자를 이용하여, 적의 숫자와 허실 및 동정을 엿본다. 그런 다음 군사를 일으키면 큰 공을 세우기 쉽고 따라서 필승이다.
병법에서는 ‘간첩이 필요치 않은 곳은 없다’고 말한다.
전쟁의 역사 자체가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적을 알려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적의 상황을 염탐해야 하는데, 그중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첩보전이다. ‘첩보전’은 모든 전쟁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