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산업재해를 노동당국 신고 없이 은폐했다는 의혹으로 도마위에 올랐던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의 노동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인사상 불이익 등을 이유로 산재 신청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4명 꼴로 산재 신청 요건에 해당하면서도 공상 또는 개인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관련 안전보건 실태를 조사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노무법인 '사람과 산재'가 노조 의뢰로 위탁 진행했으며, 조합원 등 노동자(전체 사업장 노동자 2600여 명 중 2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과 조합 간부 집단 심층 면담 등을 조사에 활용했다.
노조가 공개한 '2021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안전보건진단결과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노동자 212명 중 180명(84.9%)이 '산재 신청에도 인사상 불이익이나 상사 눈치를 보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조직 문화가 조성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8.7%(82명)는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으로 4일 이상의 병원 요양 치료가 필요하지만 산재 신청을 않고 공상(보상금 종결)이나 개인 치료로 대체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산재 요건인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로 인해 4일 이상 요양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해당되면서도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면담 조사선 "산재 신청하거나 병가 신청을 하면 하위 (인사)고과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산재 인정을 받아들일 분위기가 전혀 없다고 본다",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조합원이 산재 신청할 수 있길 바란다" 등의 진술이 있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조에 따라 사업주는 산재보험 급여 신청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 또는 기타 불이익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
또 산재 신청 절차 등 법령에서 의무로 정한 안전보건교육도 요식화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회사로부터 업무 중 재해 발생한 경우 산재 신청 방법, 절차 및 보상 내용 등에 대해 교육 받았다'고 묻자 응답 노동자의 72.2%에 해당하는 153명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정기 안전보건교육(분기 당 6시간)을 받지 않았다고 답한 노동자는 81.6%였다. 새로운 작업에 배치될 때 유해·위험 요인 안전보건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도 59.4%인 것으로 집계됐다.
"교육 사진만 촬영하고 작업과 무관한 교육이 많아 지나치게 형식적이다", "작업 안전 지침이 나오기 전에 새 설비를 가동부터 한다"등의 증언도 이어졌다.
직업성 재해로 추정되는 근골격계, 청각계 관련 질환을 겪은 노동자도 과반을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설문 응답 노동자의 59.4%가 근골격 질병, 92.5%는 난청 또는 이명 등으로 나흘 이상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반면 작업장과 해당 질환간 영향, 재해 예방에 대한 보건 안전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아울러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화학물질의 유해·유독성, 취급 요령, 노출시 대응법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노동자는 49.5%로 절반을 밑돌았다.
조사를 도맡은 노무법인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의 안전보건진단 점수를 100점 만점에 37점으로 매겼다. 설문 조사 36.17점, 심층 면담 38점을 합산해 평균을 낸 점수다.
그러면서 ▲산재 은폐 관련 사과·보상·근절 공식 의사 표명 ▲작업 환경 개선 대책 마련 ▲유해물질 취급공정 위험성 평가 및 해결책 수립 ▲사내 산업안보건위 노조 참여 보장 등을 사측에 권고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산재 신청 절차, 산업안전보건교육과 관련해 법 절차 상 큰 문제는 없었다. 일부 관리자급에서 소홀했을 수는 있다'며 '문제 제기에 대해선 충분한 검토를 거쳐 이달 중 사측 입장을 밝히겠다'고 노조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 감사를 통해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내 산재 은폐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이후 노동당국은 추가 실태 조사를 벌여, 산재 발생 보고 의무 누락과 관련해 시정을 명령했다. 과태료로는 2억8000만 원을 부과했다.
/김도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