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정부 지원 대출 안내해 드리려고요."
최근 대출금 상환 걱정에 초조하던 회사원 A(43)씨는 이달 5일 모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 안내 전화를 받았다.
상담원은 기존 대출금 일시 상환을 거쳐 저금리의 정부 지원 대출 상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안내했다. A씨는 오랜 시간 대출 절차를 차분히 설명하는 상담원의 말을 경청했다.
상담원은 "현행법상 위반 여지가 있으니 법무팀 직원이 고객님을 직접 방문, 대출 상품 전환 절차를 거치면 된다. 남은 대출금 1000만 원을 일시 상환할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저금리 전환 대출이 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으니 수사기관에게는 알리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절박했지만 미심쩍었던 A씨는 상담원과 통화를 마친 직후, 해당 저축은행·금융감독원 대표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이 말한 대로 정부 지원 대출 상품이 있는지 등을 거듭 확인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A씨는 상담원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선 현금을 급히 구해 저축은행 법무팀 직원을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약속 장소에는 은행 직원이 아닌 강력팀 형사들이 나와 있었다.
형사들이 "저축은행을 사칭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속은 것 같다. 피해 예방을 위해 나왔다"며 설득했지만 A씨는 쉽사리 믿지 않았다.
상담원의 당부대로 A씨는 "저축은행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 없다"고 둘러댔다.
형사들은 "최근 보이스피싱 일당들이 교묘히 금융기관을 사칭, 빠른 일 처리를 이유로 원격 모바일 조작 프로그램(팀 뷰어)·보안 앱 설치를 유도한다"며 "휴대전화 내 연락처 등 개인 정보를 빼돌릴 수 있고, 착신 전환을 통해 피해자들이 관련 기관에 거는 확인 전화도 가로채 거듭 속이고 있다"며 수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제서야 A씨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마터면 큰 돈을 허망하게 잃을 뻔 했다'는 생각에 A씨는 제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같은 날 경찰은 A씨와 만나려던 보이스피싱 수금책 B(24)씨를 한 발 앞서 붙잡아, 추가 피해를 막았다.
검거 당시 B씨의 소지품 중에는 피해자 A씨가 돈을 건네면뒤 주려고 한 '가짜' 납입 증명서가 있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B씨를 추궁, 미리 파악한 약속 장소로 나가 A씨를 설득할 수 있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12일 '저금리 전환 대출'을 미끼로 한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를 직접 만나 거액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B씨를 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B씨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5일까지 2주간 광주와 전남 목포·순천·진도 등지를 돌며 보이스피싱 피해자 14명을 만나 총 1억8175만 원을 가로채 총책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조사 결과 B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낸 '고액 아르바이트' 구직 광고를 본 뒤 일정 수수료를 받고 수금책으로 활동했다.
B씨는 저축은행 직원 행세를 하며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건네 받았으며, 주로 택시를 이용해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어눌한 조선족 말투는 옛말이 됐다. 전문 용어를 활용하며 유창하게 말하는 상담원에게 자칫 속아 넘어가기 쉽다"고 경고했다.
이어 "은행 직원을 보낼테니 현금으로 상환해야 한다는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도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고자 엄정 단속하겠다. 검거 시에는 추가 피해 예방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김도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