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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난 년들’
  • 호남매일
  • 등록 2021-03-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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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말 매화 년이/ 바람이 났다네./ 고추당초 보다/ 매운 겨울살이를/ 잘 견딘다 싶더만/ 남녁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권나현 시인의 ‘봄바람 난 년들’ 한 부분이다. 봄바람 난 아낙들이 길을 나섰다.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로 봄을 노래한 한 편의 시가 길동무를 해 준다. 시를 들으면서 봄바람 만나러 가는 길은 흥에 겨워 노래가 절로 나온다.


남도에서부터 시작된 봄은 어느덧 전국을 들썩거리게 하였다. 코로나 상황에 인적이 없는 곳으로 떠나는 길은 행복하다.


코로나 펜데닉 상황에서도 봄은 온다. 남녁에서부터 부는 바람은 사람 사는 세상에도 불었다.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지인들이 함께 길을 나섰다. 모처럼 얼굴을 본 지인들은 안부를 묻는 시간만 해도 한나절이다. 꽃바람을 찾아 광양으로 길을 옮겼다.


이 봄, 섬진강을 보지 않고 넘길 수 없다 하여 19번 도로 섬진강변을 달렸다. 가는 길마다 궁뎅이 들썩거린 봄꽃들이 바람에 못 이겨 꽃잎을 터트렸다. 이른 매화는 벌써 바람결에 풍화되고 있었다.


봄바람에 넘어간 네 명의 아낙은 광양 옥룡사의 동백꽃을 만나러 길을 떠났다. 오랫만의 만남에 입고 옷 색이 봄날을 말해 준다. H는 동백보다 붉은 옷을 입고 나타났다. 올 봄 처음으로 외출한 K는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었다면서 함박웃음이다.


H는 코로나로 인해 꽃피는 것도 잊었는데 신나는 하루가 될 것이라면서 나오는 언어마다 노래로 연결한다. 동백을 말하면 ‘상사화’ 노래를 부르면서 봄날을 노래한다. 며칠 동안 외출을 못해 모처럼의 외출이 행복한 시간인가보다.


K는 오랜만에 외출에 지인이 시를 보내 주셨다고 한다. 글머리에 제시한 권나현 시인의 ‘봄바람 난 년들’ 이었다.


작년 겨울은 유독 추웠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남녘에서 넘어온 바람 놈에게 버틸 재주가 없는 꽃들은 모두 피어나 있었다. 광양은 햇살이 먼저 도착한 곳이므로 ‘삘겋게 루즈가정 칠한’ 진달래까지 피어 있었다.


진달래가 핀 언덕길을 내려 올 때는 ‘진달래가 곱게 피던 날’ 노래를 부르며 언덕을 넘었다. 스스로 알파고라고 부르는 K는 옥룡사 동백숲길을 걸으면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노래를 맛깔스럽게 불렀다.


‘그려 어쩔 수 없제. 잡는다고 되것어.’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라 하지만 봄바람이 불어오는데 이 바람을 견뎌 낼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그려 이 바람에 어떻게 집에 머물겠는가? 허리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내가 이 길을 올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M은 꽃보다 더 해 맑은 미소를 지으며 모처럼 만난 지인들과 게임도 하려고 보드 게임 자료를 준비하였다면서 가방에서 한 뭉치의 놀잇감을 보여주었다.


봄 길에 꽃만 보면 웃는 바보로 만든 범인은 바로 꽃이다.


그 꽃들이 바람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이 봄은 걸판진 바람난 년 보다는 바람난 여자라는 고상한 언어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남도에 키 큰 목련, 개나리 처녀, 수양버들까지 봄바람이 나 버렸다. 그런데 어찌 이봄을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사람의 발길이 드문 옥룡사 동백 숲에는 길마다 붉은 꽃이 하트가 되어 산책 나온 연인들의 성지가 되어 있었다.


길목마다 붉은 꽃잎은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절이 없는 절, 절터만 남아 있는 옥룡사에서 붉은 동백꽃을 본 H는 시를 읊었다. “동백은 세 번 핀다. 한번은 나무에 피고, 한번은 땅에 피고, 마지막에 내 가슴속에 핀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옥룡사 동백 숲에서 동박새도 울고 바람난 년들도 웃음꽃이 피었다.


모두가 함께 떠나는 봄 길은 서사시다. 바람이 좋으니 사람들의 이야기꽃도 피고, 권나현 시인의 시어를 그대로 인용하면 ‘대그박에 피도 안 마른’ 제비꽃도 모두 피어 봄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준다.


권나현 시인의 ‘바람난 년들’ 마지막 부분이다.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때가 아니랑게/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 한/ 낮짝 이라도/ 귀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나가 보드라고…’ 그려 워쩔 수 없제. 잡는다고 되것어 말린다고 되것냐고. 인자 어찌야쓰까. 이 시를 만난 온 동네 사람들이 꽃 찾아 길을 떠날 것인데 코로나 상황에 인적 없는 곳에서 봄바람을 만나보세. 꽃바람이 부는 날에는 널찍한 강변에라도 서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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