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고전연구가
은혜를 활용하는 간첩술 ‘은간(恩間)’은 ‘병경백자’ 「간자」에서 말하는 16가지 ‘용간법’중의 하나다.
방법은 적국의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어 인심을 정복함으로써, 그 나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내측에 상황을 알려주도록 만드는 것이다.
219년 10월, 여몽(呂蒙)은 남군(南郡)을 점령했다. 남군은 촉나라 군의 중요한 거점으로, 관우와 그 휘하의 많은 장수 및 병사들과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여몽은 남군으로 진입한 후 그들을 박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병사들이 함부로 개인 재산을 빌리거나 빼앗지 못하게 했다. 한번은 여몽과 같은 고향인 여남(汝南) 출신의 한 병사가 백성의 비옷인 도롱이를 가져다가 갑옷을 덮었다.
여몽은 군법을 어긴 이 병사를 눈물을 흘리며 처형했다. 장수와 병사들은 벌벌 떨며 다시는 백성의 물건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여몽은 아침과 저녁에 측근을 보내 노인과 병자를 돌보고 식량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었다.
관우는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정탐 병은 여몽이 하고 있는 일들과 남군의 가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여몽에 대해 극히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관우의 군대는 급격히 전투 의지가 흩어져 여몽을 공격하라는 관우의 명령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때 손권의 대군이 도착하자 관우의 병사들은 앞을 다투어 손권에 투항했고, 관우는 패하여 맥성(麥城)으로 물러났다.
269년, 서진(西晉)의 양고(羊枯)는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오나라는 장강을 천연의 방패로 삼고 있는 데다 병력도 비교적 강했다. 이에 양고는 무력으로는 단시일 내에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은간’ 계략을 활용하기로 했다.
오나라에서 투항해온 사람들 중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자들은 자유롭게 돌아가도록 했고, 부하·사졸들에 대해서도 잘 대우해주었다. 그러자 많은 오나라 군사들이 적의를 버리고 투항해왔다.
누군가가 오나라 어린애 두 명을 잡아 오자 양고는 즉각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냈다. 그 후 두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양고에게 투항했다. 오나라 군대의 내부는 빠른 속도로 무너져내렸고 오나라는 마침내 평정되었다.
유혹 수단을 활용하는 간첩술 ‘유간(誘間)’은 유혹의 수단으로 간첩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사기’ 「장의열전 張儀列傳」을 보자.
기원전 313년, 진나라는 제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진왕은 제와 초의 연맹을 깨트리지 못하면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상국 자리에 있는 장의를 초나라 회왕(懷王)에게 보냈다. 회왕을 만난 장의는 회왕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득했다.
“진국은 본래 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싶어 했고, 제나라와는 원한이 쌓여 있습니다. 지금 전국이 제나라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준비하는데 귀국이 제나라와 연맹하고 있기에 진국은 귀국과 우호 관계를 맺을 길이 없어졌고 저도 대왕을 위해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왕께서 제나라와 단교하신다면 제가 저의 왕께 아뢰어 6백 리 땅을 귀국에게 할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과 우호 관계를 맺고 제나라를 약화하면 귀국은 또 다른 6백 리 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야말로 일거삼득이 아닙니까?”
조 회왕은 6백 리 땅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즉시 제나라와 단교를 선언함과 동시에 진으로 사람을 보내 땅을 받는 절차를 밟게 했다.
집으로 돌아온 장의는 술에 취해 수레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는 것을 핑계로 무려 석 달 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일부러 초나라 사신을 만나지 않으려는 속셈이었다.
회왕은 장의가 제나라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확고하지 않다고 의심하는 것이 아닐까 해서 용사를 제나라에 보내 제나라 왕에게 모욕을 주었다.
제나라 왕은 크게 화가 나 마침내 초나라와 단교하고 진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말았다. 그제야 장의는 초나라 사신을 만나 이렇게 비꼬았다.
“어째서 아직도 우리가 할양하겠다는 6백 리 당을 안 가져가고 있소?”
(『전국책』에는 장의가 사신에게 지도를 펴 보이며 6백 리의 땅을 주겠다고 했고, 사신이 6백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항의하자 나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6백 리 땅이 어디 있겠느냐며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되어 있다.)
사신은 귀국하여 초왕에게 보고했다. 초왕은 그제야 장의에게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조왕은 즉각 진을 공격했다. 그러나 진·제 연합군이 일찌감치 대비하고 있던 터라 초나라는 대패하고 말았다.
초는 오히려 두 개의 성을 진나라에 할양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