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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을 노래한다
  • 호남매일
  • 등록 2021-04-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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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꽃들이 노래하는 봄날이다. 봄날은 꽃만이 아니라 겨우내 땅속에서 숨어 있던 나물이 고개를 쏘옥 내미는 시기다. 꽃피는 길을 걷다보면 지천에 널린 것이 봄나물이다. 봄 여행길에 즐거움은 나물을 팔고 계시는 아낙네의 수고스러움을 만나는 것이다.


봄 길을 가다 나물을 산더미처럼 올려놓은 할머니의 손길을 만났다. “할머니 쑥부쟁이 나물 있어요.” “쑥부랭이 맛나제. 간장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누가 물어가도 몰러.” 어릴 적 엄마가 무쳐 주었던 나물 맛 기억에 쑥부쟁이 나물은 봄이 되면 입안에 감돈다. 할머니는 취나물, 머위, 고사리와 작년 가을에 말려두었던 나물이 봄을 노래한다.


동행하였던 지인이 “이모 취나물 주세요.” 할머니는 팔을 먼저 보여주신다. 여기저기 산딸기 가시에 찔린 상처다. 좋은 나물을 채집하고 싶어 가시덤불 사이에 있는 취나물을 체취하신 할머니의 정성이 감사해 동행한 지인은 할머니 “약 사서 바르세요.” 하면서 웃돈을 드리고 취나물을 받아 든다. 정겨운 봄날이다.


봄이 오면 들과 산에 널린 것이 나물이다. 그 나물을 채집해 데쳐서 조물조물 무쳐진 밥상을 받으며 마음에 봄이 가득이다. 봄이 되면 삶의 터전에서 나물을 먹는 법과 방법이 있겠지만 쑥, 냉이, 달래는 누구나 좋아하는 나물이다.


농가월령가에도 음력 2월에 나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산나물은 아직 이르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입맛을 돋우나니/ 본초 강목 참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창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 낱낱이 적어 놓고 때맞추어 캐어 두소./ 시골집에 넉넉지 못하니 값진 약 쓰겠느냐’ 를 보더라도 지역의 특성에 맞게 산과 들에서 나물을 뜯어 입맛을 돋았으며 몸을 보호하고 건강을 위해 나물을 먹은 것을 알 수 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나물을 먹는데 봄나물 중에서 가장 많이 먹는 것은 냉이와 달래다.


냉이는 봄나물 중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냉이는 오장을 조화롭게 한다. 특히 성질이 따스해 동양인에게 맞는 나물이다. 냉이는 데쳐서 나물을 해먹을 수도 있으며 된장국에 넣어 먹어도 맛과 향이 일품이다. 냉이는 다른 재료와 잘 어울린다. 라면을 넣어 먹어도 좋고, 찌개, 탕에 넣어도 향을 잃지 않으며 본연의 맛을 지킨다.


김훈작가도 ‘자전거여행’에서 ‘된장과 인간은 치정간계에 있다. 냉이 된장국을 먹을 때, 된장 국물과 냉이건더기와 인간은 삼각 치정관계에 있다. 이 삼각은 다른 두 쪽을 끌어안는 구도의 치정이다.’ 냉이에 대한 예찬을 보더라도 냉이는 우리의 삶과 함께 한 나물이다.


냉이뿐만 아니라 두릅, 취나물, 방풍나물 등 못 먹는 풀이 없을 정도로 봄 새싹은 우리의 삶과 함께 한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나물은 쑥부쟁이다. 가을이 되면 보랏빛 꽃을 피워내는 쑥부쟁이는 봄이면 언덕에 많이 있다. 쑥부쟁이 나물은 쌉쓰름한 맛이 일품이다.


쑥부쟁이 나물을 삶을 때는 물을 많이 넣고 훌렁훌렁 삶은 다음에 쓴맛이 있기 때문에 물에 살짝 담가두면 아린 맛이 덜하다. 쑥부쟁이 나물은 국간장과 참기름만 넣어도 맛이 난다. 기호에 따라 된장을 넣어 무쳐 먹어도 좋다. 울릉도에서 자라는 부지갱이와 쑥부쟁이는 같은 종류인데 섬과 육지에 따라 다르게 피어나며 맛에도 차이가 있다.


쑥부쟁이를 무쳐 본다. 훌렁훌렁 끊는 물에 잘 데쳤더니 그냥 먹어도 맛이 좋다. 쌉쓰름한 맛이 입가에 감돈다.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싶다. 봄에는 나물을 먹어야 봄을 보낸다. 어린 쑥부터 시작해 미나리, 두릅, 취나물, 머위 등 셀 수 없이 많은 봄나물을 먹어야 일장춘몽의 봄을 보내더라도 마음이 아프지 않을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인간은 원형의 것을 그리워하는 것이 있나보다. 어린 시절에는 멀리 했던 나물이 먹어야 봄을 보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쑥부쟁이 나물을 무쳐서 넓은 그릇에 하얀 쌀밥을 넣고 매실로 담근 고추장 한 스푼을 올려놓고 참기름을 듬뿍 넣어 밥을 비벼본다. 맛나다. 올해는 꽃이 빨리 피고 져 봄이 아쉽지만 입안에 나물이 가득 담긴 봄이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대궐인 봄에 봄나물 입안에 가득 넣고 이원수의 ‘고향의 봄’ 노래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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