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가 지역 정·관계 인사의 불법 주·정차 단속 자료를 무단 삭제, 과태료 면제의 부당 특혜를 나눈 사실이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묵은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단속 무마 청탁이 만연화되며 현직 시 의원부터 청원경찰까지 두루 과태료 면제 특혜를 나눴다.
특혜성 다분한 과태료 면제 처분에 연루된 공직자들은 무더기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됐고, 신뢰·공정과 함께 무너진 행정 권위는 경찰 수사까지 앞두고 있다.
◇ 공직자 48명·지방의원 5명 과태료 무마 '특혜'
5일 광주 서구 등에 따르면, 시 감사위는 최근 3년(2018~2020년)간 '불법 주·정차 과태료 부과 실태'를 감사한 결과 주·정차 과태료 부과 업무에 있어 부정 청탁 관행이 있었다고 확인했다.
주·정차 과태료 무단 면제를 청탁한 현직 공직자는 48명이다. 이 중 공무원은 5급 5명, 6급 이하 29명이었다. 5급 이하 모든 직급의 공무원이 부정 청탁을 했다. 공무직·청원경찰 등(14명)도 48명에 이른다.
관련 직무를 맡아 자신의 과태료 처분을 스스로 무마한 공직자도 있다.
감사 처분 대상은 아니지만, 광주 서구의회 전·현직 의원 5명, 퇴직 공무원 4명(국장급 고위직 포함)도 과태료 무마 특혜를 누린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전직 의원 1명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시 의회에 입성, 활발히 의정 활동을 하고 있다.
◇ 검수 권한 '무분별', 감독 '허술'…고삐 풀린 기강
규정 상, 중복 단속·차량 번호판 인식 오류 등의 이유로 주·정차 단속 자료를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은 담당 공무원 1명에게만 있다.
그러나 서구는 주·정차 단속 관리 전산시스템상 삭제 권한을 공무직 수 명에게도 부여, 과태료 처분 행정에 구멍이 생겼다.
담당 공무원들은 무분별한 삭제 권한 부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연 평균 16만 건 이상의 단속 자료를 공무원 1명이 모두 검수하기 쉽지 않은 만큼, 묵인한 측면도 있다.
교통지도과는 민원 대응, 업무량 과중 등의 인식이 강한 탓에, 행정 사무·전산에 대한 이해가 낮은 신임 공무원들이 대부분의 자리(15명)를 메꾸고 있다. 반면 과 직원 39명 중 24명(61.53%)을 차지하는 공무직이 현장 단속 등 실무를 도맡고 있어, 내부 통제·감독이 쉽지 않았다.
무기계약 근로자인 공무직들이 신분·직무상 지위가 높은 공무원·구 의원의 청탁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전·현직 직급 고하를 떠나 단속 무마 청탁이 관행화된 만큼, 공직 기강 고삐 자체가 풀렸단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공직자 무더기 징계 불가피…경찰 수사 '가시권'
시 감사위는 과태료 단속 무마 청탁을 한 공직자 48명(자가 면제자 1명 포함)에게 징계가 필요하다고 서구에 통보했다. 지방의원·동료 공직자의 청탁에 응해 과태료 처분을 면하게 해준 16명은 징계와 함께 수사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당한 과태료 처분 면제를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결정하고자 만든 '의견진술심의위'를 부실 운영한 공직자 5명에겐 '주의' 처분을 내렸다.
또 시 감사위는 과태료 처분을 면한 2만5159건 중 4169건은 행정 재량을 과도하게 해석, 무분별하게 면제했다고 봤다.
감사 결과 확인된 미부과 과태료 규모는 1억2700만여 원(3590대)에 이른다. 그러나 잃은 것은 과태료 수입보다도 행정 신뢰다. 위법 행위에 책임을 지고 과태료를 꼬박꼬박 냈던 시민들로선 거세게 반발할 수 밖에 없고, 신뢰·공정을 담보해야 하는 규제 행정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수사도 피할 수 없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지난 2월부터 관련 내사(직무유기 혐의)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번 시 감사위 결정에 따라 공식 수사 전환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