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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공간에서 인간의 정체성
  • 호남매일
  • 등록 2021-04-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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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찬란한 봄날이다. 싱그러운 초록 잎들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다. 꽃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헤르만 헤세의 봄의 말 언어들이 튕겨 나온다. 이러한 봄날은 누구나 감탄사가 언어가 되어 가슴을 울리게 된다.


상춘객이 되어 푸르른 숲을 노래하며 밖에서 놀다 집에 들어오면 어느덧 집에 있는 가구와 사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집이 좀 넓었으면 가족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묵은 살림을 정리하게 된다.


봄날, 묵은 때를 털어내기 위해 대청소를 하다보면 오래된 가구를 버리고 새롭게 집안을 정리하는 상황에 가족과 분쟁이 많다. 두 집안의 사건이다. 먼저 K의 상황이다.


오랜만에 만났던 K는 3월은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진 달이라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코로나 시기에 누구나 펜데닉 상황이지만 조금은 특별한 K의 사연을 들었다.


K는 벗이 하늘나라에 가게 되어 상심한 나날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 와 보니 거실에 자신의 가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지” 하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딸과 남편이 엄마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결혼할 때 사온 가구를 당근 마켓에 다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그 가구는 결혼할 때 준비한 물건이라 애착이 가 아끼던 것이었다.


가구가 없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화가 나 “당장 내 가구 갔다 놔” 했는데 당근 마켓에서 팔린 상품은 결국 돌아오지 않아 상실된 마음으로 잔인한 3월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M에 대한 이야기다. M은 음식으로 남편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매일 시장을 봐서 요리를 하느라 봄날을 느낄 수가 없다고 하였다. 봄이 되자 거실 공간이 좁아져 집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화가를 꿈꾸는 아이의 작업실이 필요해 남편의 서재를 정리했다. 오랫동안 남편과 집을 정리해야 한다는 협의 과정이 있었는데 결론이 없자 남편이 업무로 부재중에 책을 모조리 정리해 버렸다.


그러자 집에 들어온 남편은 책이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현했는데 그러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이 되어 남편의 상실된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해 정성을 다한 음식을 만들어 주느라 봄날 외출이 못했다는 것이다.


봄이 되면서 집안 살림을 정리하게 되면서 빚어지는 해프닝(happening)이라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없어졌을 때 느끼는 인간의 상실감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은 정체성과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 심리학에서는 아이덴티티(Identity), 자신의 정체성이다. 자신의 물건을 타인에 의해 정리했다는 것은 정체성이 송두리째 사라졌다는 것이며 그에 따른 상실감은 충격이다.


또한 가족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한 상황은 오랫동안 깊은 슬픔에 빠지며 회복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도 공간에 대해 “공간이 나다”를 이야기 하면서 공간에서 내 위치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의 공간에서 아끼던 물건이 사라져 버린 것은 자신의 흔적과 정체성이 사라져 버려 그 상실감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앞에 두 이야기를 보면서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중요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공간에는 자신만의 흔적이 있다. 그런데 그 흔적을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 결정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몇 년 전이다. 상가 집에서 50대 남성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남성이 요즘은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날부터인가 부인의 관심이 아들에게로 간다는 것이다.


미역국을 떠 주는데 왜 아들의 국에는 고기가 많은 것인지, 계란 후라이 요리를 해서 먼저 아들을 챙겨 주는 부인을 보면서 이것이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어느 날부터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슬플 일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매 순간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고민을 한다.


따라서 공동의 공간이 허락되는 집 공간에 대한 배려에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봄날이다. 매번 새롭게 돋아나는 나무와 숲의 푸르른 생명력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인간도 끊임없이 봄이 되면 푸르른 나무처럼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위로해 주고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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