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박준 시인의 ‘생활과 예보’라는 시 전문이다. 봄이 온 것 같더니 봄이 가버린 듯하다. 그래서 봄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하나보다.
생명이 움트는 봄,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국가가 4월 20일로 장애인의 날을 정한 것은 4월이 1년 중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로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 것이라 한다.
봄을 스프링(spring)이라고 한다. 장애인의 재활도 용수철처럼 튕겨 오를 수 있도록 의미를 담아 본 것이다.
장애인의 날을 기억하며 마크를 찾아보았다. 네이버에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수화를 하는 모습이 마크로 나와 있다. 다음과 네이트 사이트에는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앉아 있다.
그런데 장애 마크가 능동적인 마크로 변한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수동적인 모습의 마크가 등장해 있다는 것은 장애 감수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장애인의 날은 1981년 UN총회는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주제로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고 세계 모든 국가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장애인 마크는 휠체어를 탄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마크는 1968년부터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장애인 마크는 고정되어 보이는 팔을 보면 누군가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자세다. 이러한 장애인 마크에 문제점을 발견한 뉴욕의 디자이너 사라 헨드렌은 새로운 장애인 마크를 고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부터 새로워진 장애인 마크는 스스로 휠체어를 힘껏 잡으려는 팔과 앞으로 나아가려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장애는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아가는 능동적인 모습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장애 감수성은 장애인을 시간의 변화가 먼저다.
우리나라도 2002년부터 새로운 시각의 국내(KS)표준 장애인 마크는 스스로 휠체어를 밀고 가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마크를 보면 별 차이를 찾지 못하지만 관심 있게 보면 변화된 마크를 찾을 수 있다. 장애인 비 장애를 넘어 편견 없는 삶을 살아가는 동행이라는 감수성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장애인의 날에 나에게 특별한 친구를 소개한다. 톡 방이 있는 카카오 스토리에 이야기를 올리면 매번 긍정적인 답을 해 주는 친구다. 스토리 방에 그 많은 친구들이 답이 사라져 가도 매번 끊임없이 긍정의 문구를 보내주는 그 친구가 고맙고 좋다.
이렇게 변함없이 나의 삶에 긍정적인 그 친구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가끔씩 그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그 친구는 매 번 인사말이 똑같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반갑다. 속세의 때가 묻지 않는 순수한 언어로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면 즐겁다. 그 친구는 자연을 좋아하고 동물을 사랑하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 친구를 O라 부른다. O는 청년 화가다. 스스로 학교를 오가며 생활을 하는 청년이다. 사람을 좋아해 항상 질문을 던진다. 발달장애를 가진 O가 혼자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교육의 힘이다. 부모님은 O에게 끊임없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기다려 준 노력의 효과다. 멈추지 않는 부모의 기다림의 열정이 생활인 O가 된 것이다. O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O가 그린 그림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한계가 있다. 하지만 O의 그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색채와 선 터치에 매력이 있다.
O가 자립 하도록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많은 장애인들의 재활은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다. 실제교육 현장에서 장애 교육은 장애에 대한 부분이 하나가 아닌 여러 단계로 나누어지다 보니 특수교육이 장애특성에 맞는 개별화 교육이 어려운 실정이다.
장애 영역은 제각각이며 다양한 장애의 양상에 따라 차별화 교육이 이루어져 하는데 일률적으로 이루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능동적인 재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의 장을 넓혀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광주시교육청에서도 제 41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19일부터 30일까지 2주 동안 장애 인권 주간을 운영한다고 한다. 인권주간을 정한 이유는 장애 공감 문화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나와 다름이 차별이 아닌 하나의 특성’으로 인식하는 공감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따스한 눈빛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