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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량지에서 봄을 보내다
  • 호남매일
  • 등록 2021-04-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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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안도현의 제비꽃에 대하여 시 한 앞부분이다.


제비꽃은 봄이면 쉽게 볼 수 있는 풀꽃이다. 보랏빛 작은 꽃이다.


그러나 길을 걷지 않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스쳐가는 풀이다. 봄도 그렇다. 무심히 살다보면 그냥 지나가는 것이지만 봄빛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봄날이 가면 아리다.


강원도에 사는 지인이 두릅을 보내왔다. 4월초 섬진강 장터에서 사온 두릅과 강원도의 두릅의 차이는무엇일까? 생각 끝에 늦두릅이라 장아찌를 담았다. 올해는 여기저기서 보내온 두릅으로 봄을 만나 오랫동안 두릅 이야기를 나눌 것 같다.


코로나 19로 인적 없는 곳을 찾아 헤매었다. 올리브 그린의 봄빛을 찾아 산하를 헤집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서인지 길에서 만나는 작은 제비꽃만 보아도 “아, 봄이 가는 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다. 어느덧 산하는 초록으로 물감을 칠하고 있다.


봄빛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날, 벗이 물빛이 아름다운 호수 사진을 보내왔다. “어디야” 묻는 질문에 세량지라 한다.


25년 전인가보다 일간지 1면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감탄을 하며 찾았던 세량지를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집에서 차를 타고 5분정도 걸리는 세량지를 다시 찾은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행히 세량지는 연두 빛 봄과 하늘을 아름드리 담고 있었다.


2012년 미국 뉴스 채널 CNN 선정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곳 중 24번째 순위에 선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은 곳이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전국의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세량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화순을 찾고 있다.


세량지는 산 벚꽃이 만발하는 봄철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시간에 가장 아름답다. 세량지 호수에 벚꽃과 연푸른 봄빛을 품은 모습은 경이롭다. 이름 아침 안개와 윤슬(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면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진을 보신 분들은 “어느 나라야. 유럽이야.” 하며 “이 장소가 어디지” 하고 묻는다. “우리 동네 저수지야” 하며 당황해 한다.


봄이 가는 길목에서 며칠 동안 시간차를 두며 세량지를 찾았다. 벚꽃이 진 세량지에는 올리브 그린, 연두 빛, 푸른 물빛이 감도는 호수는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세량지의 좋은 점은 임도로 연결된 산책로다. 세량지 호수를 감싸 안으며 걷는 둘레 길에는 층층나무는 하얀 꽃을 피워냈으며, 팽나무 푸른 잎은 아름드리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봄이면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로 길마다 작은 풀꽃들이 길을 멈추게 한다. 뽀리뱅이, 씀바귀, 고들빼기는 노란 꽃잎을 피워냈다. 엉겅퀴와 둥글레는 꽃대를 세웠다. 봄맞이꽃은 사랑스러워 대화를 시도해 본다. 지칭개, 현호색, 양지꽃이 핀 봄 길을 걷다보니 임도가 끝이 난다.


세량지 가는 길을 선택하며 길가에 핀 작은 제비꽃을 발견한다.


봄이 가는 것을 알려주는 풀꽃을 보며 봄이 보낸다. 세량지에서 가는 봄을 보낸다. 벚꽃이 피는 시기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봄빛이 소멸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가는 봄에게 인사를 해 본다.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는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 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제비꽃에 대하여 시 뒷부분을 읽는다. 그렇다.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그러나 봄을 아는 사람은 그냥 보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꽃이 지면 눈물이 나고 연두 빛이 초록으로 덮어지는 산하를 보면 가슴이 아린다.


봄이 오면 생각나는 엄마의 언어다. “가을은 하늘빛에서 봄은 땅에서 온단다.” 하며 이른 아침이면 바구니를 들고 봄나물을 캐 부지런한 손으로 봄빛에 나물을 말리셨다. 그 기억은 나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세량지 나오는 길에 땅 두릅 한 봉지 사 들었다.


지척에 아름다운 장소를 두고 봄을 찾아 먼 길을 돌아다녔다. 봄이 가는 길목에서 세량지를 벗 삼아 보낸다.


제비꽃을 보지 않아도, 세량지를 보지 않아도 봄을 갈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억하는 봄은 세량지를 만난 봄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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