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에 기증된 이건희 미술소장품. 이응노 화백의 작품.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미술 소장품 중 수 십점이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됐다.
광주시는 28일 "이건희 컬렉션 중 김환기, 오지호, 이응노, 이중섭, 임직순 작가의 작품 30점을 이 전 회장의 유족 측으로 부터 시립미술관 소장품으로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시립미술관 운영에 기여하기 위해 고인의 미술 소장품 중 광주에 연고를 둔 작고 작가들의 근현대기 대표 작품작들을 추려 기증 의사를 밝혀왔다.
유족 측은 "고인의 미술 애호와 나눔이 광주시민들에게 큰 의미가 되기를 바라고, 그 뜻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증작은 전남 신안 출신으로 한국대표 추상화가인 김환기(1913∼1974)의 작품 5점, 화순 출신으로 조선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남도서양화단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오지호(1905∼1982)의 작품 5점,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직후 시위 군중을 표현한 '군상(群像)'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이응노(1904∼1989) 작품 11점 등이다.
또 국민화가로 불리는 이중섭(1916∼1956)의 작품 8점과 오지호 후임으로 조선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남도서양화단에 영향을 끼친 임직순(1921-1996)의 작품 1점도 나란히 기증됐다.
시립미술관은 기존 소장품으로 김환기 작가의 유화작품 1점과 드로잉 작품 2점을 소장 중이었으며, 이번에 1950∼60년대, 1970년에 제작한 유화작품 4점과 드로잉 1점을 한꺼번에 기증받음으로써 김환기 작품세계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남도화단에 정착시키고 남도 서양화단의 뿌리 역할을 했던 오지호의 작품은 1960∼70년대 제작한 풍경 4점과 정물 1점의 유화 작품이 기증됐다. 기존에 소장해온 7점의 유화작품과 함께 오지호 컬렉션의 깊이를 더해 줄 것으로 보인다.
오지호의 뒤를 이어 1961년 조선대 미술대학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지도했던 임직순의 작품은 1점의 유화작품이 기증됐다. 미술관 소장품으로는 4점의 풍경과 1점의 정물을 소재로 한 유화작품이 있는데 정물, 풍경과 함께 임직순의 주된 작품소재 중 하나였던 인물좌상의 유화 작품이 이번에 기증됨으로써 비로소 임직순의 정물, 풍경, 인물화 작품을 고루 소장하게 됐다.
'문자추상'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던 이응노의 작품은 문자추상 경향의 대작 2점과 '군상' 연작 3점, 까치와 말, 염소, 닭을 소재로 한 수묵화 5점, 말년에 제작한 수묵담채의 산수화 작품 1점으로 5명의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이 기증됐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이중섭의 작품은 은색 담배종이에 그린 '은지화'(銀紙畵) 4점과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 4점이 기증됐다.
특히, 화구를 살 돈 조차 없는 궁핍한 생활 속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렸다는 이중섭의 은지화는 일반적으로 1950년대 초반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번 기증된 4점의 작품 중 3점이 1940년대 작품으로 은지화의 시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의 '엽서화'는 1940∼1943년 연인에게 글자 없이 그림만 그려 보낸 것으로 현재 90여점이 전해온다. 이번에 기증된 엽서화 4점은 이중섭 초기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귀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전승보 관장은 "지역에 연고를 둔 대표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을 기증받게 돼 미술관 소장품이 더욱 풍성하게 됐다"며 "예향이자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에 대한 기증자의 배려로 미술관의 품격과 소장품의 질적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시립미술관은 미술관 개관 30주년을 맞는 2022년에 이번 기증 작품들을 시민들에게 전시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한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