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여행이 삶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느 날 훌쩍 떠났던 여행지가 갑자기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배를 타고 섬을 향해 물길 여행을 떠났던 소매물도다. 그리운 섬 소매물도는 쿠크다스 섬이라고 불린다. 배낭을 메고 훌쩍 찾아가고 싶은 섬, 그리움 때문이다.
깊은 밤이다. 마음에 남는 한 구절을 찾기 위해 책을 뒤적거리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화영의 문장을 만났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한 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 준다’ 그리움을 멈출 수 없다.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행복하다.
여행은 거창하다고 해서 만족도가 높지는 않다. 때로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연두 빛 색에 감탄하고, 작은 풀 한 포기에도 감정을 담아본다. “아! 그리워 그리워요. 넓은 초원의 푸른 잎도, 출렁이는 물결의 움직임도 그리워요.”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를 그리워하는 벗을 데리고 화순 세량지로 향했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며 감탄해한다.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화암사는 천년고찰이다. 큰 절이 아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처음 찾았을 때 운무가 산을 감싸고 있어 산사에 갇히게 되었다. 화암사 마루에 앉아 오롯이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비가 오면 그리운 곳이 화암사다.
여행지에서 길에 자신을 맡겨놓고 길이 이끄는 대로 걷다보면 그 길에서 위로를 받는다.
길은 사람을 닮아 있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은 굴곡진 삶을 보여준다. 탄탄한 대로는 쭉 뻗어나가는 삶을 발견한다. 결국 길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여행은 그리움을 가르쳐 준다. 그 계절이 되면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 그때 만났던 바람, 음식, 사람의 언어를 그리워하는 것은 행복의 충격이다. 화암사는 그런 곳이다.
바쁘게 살았던 일상을 멈추고 다시 보고 싶은 그리움에 해마다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산사에서 내려오다 보면 싱그랭이 마을에서 직접 기른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뚝! 뚝! 썰어 맛깔스러운 간장과 깍두기를 주시는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도 그립다. 이맘때쯤이면 봄이 살짝 남아 있는 산딸나무도 푸른 숲과 잘 어우러져 있다.
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 나만 가고 싶은 곳이다. 천반산에 둘러싸인 가막리들이다. 3월 아직은 추위를 덜 벗은 시기에 찬바람을 이고 찾았던 가막리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리움으로 남았다. 산이 강을 둘러 싼 것인지 강이 산을 둘러 싼 것인지 가막리들은 우주를 감싸 안은 것 같다.
그리움에 벚꽃이 진 봄날에 가막리들을 찾았다. 여기도 연두, 저기도 연두 빛에 감탄하다 무작정 강 길을 걷다보면 돌부리도 걷어차고 흙먼지도 만난다. 보이는 곳은 물과 산, 푸른 하늘이다. 적당한 바람이 부는 날, 천반산에서 육지 속에 섬이 된 죽도를 만난다.
죽도는 조선시대 정여립이 기축옥사와 연루되어 은둔했던 지역이다. 정여립은 이이의 문학에서 수학했다. 옹골차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기백이 있으며 임금의 앞이라 해도 자신의 주장과 고집을 꺽지 않고 자신감이 넘쳐 따르는 이도 많았지만 반대로 적도 많았다.
정여립은 강직하고 임금한테도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성향 때문에 지배 권력의 입장에서는 위협적이고 불편한 존재였다. “한강이 얼 때 정여립이 쳐들어올 것입니다.” 모반사건으로서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하였다가 진안 현감이 이끄는 관군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자 자살했다고 한다.
죽도는 육지 안에 섬이라 피신하기에 좋은 지리적 장소다. 정여립은 그곳에서 어떠한 꿈을 꾸었을까? 잠시 천반산에 정상에 앉아 그날의 역사를 생각을 해 본다. 천반산에서 내려다보는 가막리들은 다른 지역에 산새가 높다.
가막리들을 지나 만나게 되는 멋진 광경은 물길을 돌려 논을 만들기 위해 바위를 폭파해 버림으로써 폭포가 되었다.
인위적으로 수로를 만들기 위해 바위를 폭파 시켜서 만든 곳은 지금은 차박 성지가 되어 있다.
나를 찾는 여행을 하고 싶을 때 그리움이 묻어나는 곳으로 떠나본다. 걷는 동안 산을 둘러싼 물줄기 돌아가는 곳이 장관인 육지속의 섬 죽도에서 역사속의 인물 정여립을 생각해 본다. 그가 조직한 대동계의 만민평등의 사상이 동학운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천반산 죽도 풍광이 그리워서 다시 찾았다. 가는 길은 가르쳐 주지 않으련다. 누구나 한번 찾았던 곳에 발길을 가는 곳은 그리움 때문이다. 바람과 구름, 자연이 주는 그리움을 찾아 오늘도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