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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사지에 쓴 5·18' 박용준 열사 41년 만에 디지털글꼴로 되살아나
  • 호남매일
  • 등록 2021-05-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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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중언론 '투사회보' 첫 발간 맞춰 공개…무료 배포 철필로 등사원지 글씨 새겨…시민 참여 확산 기여



5·18민주화운동 당시 참상을 알리고 시민 참여 확산에 기여한 민중언론 '민주시민회보'(투사회보)를 손수 쓰고 끝까지 항거한 박용준 열사의 글씨가 41년 만에 디지털 글꼴로 되살아났다.



지역 시민단체 '광주로'와 광주 YWCA 등은 21일 오전 광주 서구 5·18기념재단 오월기억저장소에서 '박용준 투사회보체 글꼴 발표회'를 열었다. 41년 전 민중언론 '투사회보' 1호가 나온 날에 맞춰 대중에게 처음 공개한 것이다.



행사에는 글꼴 제작에 참여한 '광주로', 광주 YWCA, 들불열사기념사업회, 5·18기념재단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 글꼴은 박 열사가 손수 등사지에 철필로 눌러 쓴 투사회보 1~9호를 바탕으로 30만 자 가량을 디지털 복원 작업을 거쳐 만든 것이다.



제작은 대구 지역 업체인 '다온폰트'가 맡아 의미를 더했다.



'투사회보체'는 5·18기념재단, 광주 YWCA 등 제작 참여 단체 누리집에서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박 열사의 글씨는 지난 18일 열린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주제인 '우리들의 오월'의 서체로 쓰였고, 열사의 당시 일기 등이 기념 공연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41주년 항쟁 기념일을 맞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계엄군의 총이 앗아간 그의 삶이 '박용준체'를 통해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한 오월의 선물이다"고 언급한 바 있다.




1980년 당시 25세였던 박 열사는 광주 YWCA 신용협동조합 직원이었다. 고아였지만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주민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들불야학에선 불우한 도심 빈민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했다.



계엄군 만행에 격분한 박 열사는 들불야학당 출신 인사들과 함께 항쟁 진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언론을 대신해 민중신문을 펴내자고 결의를 모았다.



처음엔 '광주시민 민주투쟁회' 명의 형태의 유인물이었으나, 항쟁이 본격화된 5월21일부터는 '투사회보'라는 이름의 민중 신문을 냈다.



평소에도 반듯한 손글씨로 유명했던 박 열사는 필경(筆耕) 작업을 도맡았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등이 쓴 초고를 건네받은 박 열사는 등사원지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옮겼다.



이렇게 그의 손글씨로 쓰여진 '투사회보'는 1호부터 9호까지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투사회보는 5·18을 학생운동이 아닌 민중항쟁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항쟁이 격화되면서 5월24일부터는 광천동 들불야학 학당이 아닌 박 열사의 사무실이 있던 대의동 광주 YWCA 회관에서 제작되기도 했다.



박 열사는 최후 항쟁 소식인 10호 필경 작업을 마친 직후인 27일 새벽 YWCA회관 2층 창가에서 건너편 건물에 배치돼 있던 계엄군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산화했다.



박 열사는 항쟁의 토대를 만들거나 이끈 들불7열사 (박기순·윤상원·박용준·박관현·신영일·김영철·박효선) 중 1명이다.



임낙평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박 열사는 글씨를 잘 썼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10·26 직후 유인물부터 YWCA 신협 인쇄물 등을 도맡아 필경했다"고 회고하면서 "이번 글꼴 제작·배포가 오월정신 계승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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