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백전기법’ ‘강전(强戰)’에 이런 대목을 볼 수 있다.
적과 싸울 때 내 쪽의 수가 많고 강하면 일부러 겁먹은 것처럼 보여 적을 유인한다. 그러면 적은 틀림없이 공격해올 것이다. 그때 정예군으로 치면 반드시 적을 패배시킬 수 있다.
이는 내 쪽이 강하고 적이 약한 상황에서 활용하는 계략이다. 일부러 약한 것처럼 보여 적을 유인하여 싸우게 한 다음, 정예군으로 불의의 타격을 가한다. 이것은 ‘능력이 있으면서도 싸우지 못하는 척한다’는 ‘능이시지불능(能而示之不能)’의 구체적 운용이다.
기원전 342년, 위(魏)·조(趙) 연합군이 한을 공격했을 때 손빈이 취사용 솥을 줄이고 일부러 겁먹은 듯 피하며 적을 유인하여 마침내 방연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도 바로 이 ‘강이시약’의 계략을 아울러 구사한 결과였다.
당시 대장군 전기와 손빈은 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있어 적과 싸울 힘이 충분했다. 그런데도 적에게 허점을 보인 것은 위나라군의 교만함과 상대를 깔보는 심리를 이용하여 적의 오판을 유도,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였다.
나폴레옹은 아우스터리츠 전역에서 적의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우세한 프랑스군의 전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동맹군을 유인하여 신속하게 결전을 벌이고자 나폴레옹은 일련의 기만술을 썼다.
우선 고의로 취약한 부분을 노출 시키는 한편, 교통로가 끊기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 모습을 암시하고 심지어는 유리한 진지에서 철수하는 등의 기만 작전으로 철저히 자신의 의도를 엄폐했다.
이 때문에 적은 연속적으로 판단 착오를 저질렀다. 나폴레옹은 동맹군의 계산 착오를 통찰하자마자 즉각 반격을 가했다. 나폴레옹 군은 1만2천 명의 비교적 적은 사상자를 낸, 반면 2만7천여 명의 동맹군을 살상하고 대포 155문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나폴레옹은 이 전역에서의 승리로 유럽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게 되었다.
적이 집결한 상태에서 공격을 퍼붓는 것은 적의 병력을 분산시켜 공격하는 것만 못하다.
군사작전이란 물길을 다루는 것과 유사하다. 강한 적을 맞이해서는 그 예봉을 피해야 하니 거센 물길을 이리저리 돌려야 하는 것과 같고 약한, 적을 맞이해서는 그 허약한, 적을 가로막고 포위해야 하니 마치 작은 물줄기는 제방을 쌓아 가두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 예로서, 전국시대에 제나라가 위 나라에 포위된 조나라를 구할 때 손빈이 사령관 전기에게 건의하기를 “무릇 어지럽게 어울려 서로 싸울 때는 주먹으로 쳐서 말리려 해서는 안 되며, 싸우는 한쪽을 구하려 하면 반대편을 때려서는 안 됩니다. 요충을 공격하되 허점을 찌르면 형세가 서로 비슷해지고, 기세가 꺾이게 되면 자연적으로 포위를 풀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전국시대 초인 기원전 342년, 위나라의 장수 방연이 정병 8만을 거느리고 조나라를 침공했다. 당시의 왕은 ‘맹자’ 첫머리에 나오는 바로 그 양혜왕인 데, 그는 이 싸움에서 참패했다.
위나라 방연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조나라 왕은 즉시 이웃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고 제나라 위왕은 전기를 대장으로, 손빈을 군사(軍師)로 삼아 조나라를 구하게 하였다.
전기는 손빈의 건의를 받아들여 한단을 포위하고 있는 위나라 군대를 공격하지 않고 대부대의 출정으로 방우l가 허술한 위의 수도 대량을 공격했다. 이에 방연은 날랜 군사를 동원하여 전기의 군대를 쳐부수러 오다가 피로와 계략에 걸려 대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위나라의 포위는 저절로 풀리고, 조나라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조나라를 돕겠다고 나선 제나라의 군대가 손빈의 말을 듣지 않고 바로 한단을 포위한 위나라 군대를 공격했더라면 전기가 이끄는 제나라 군대는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요, 이긴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군사적인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청나라 함풍 연간에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 때의 일이다.
1860년 관군이 태평천국의 수도인 천경(天京-지금의 강녕)을 포위하니 사태가 매우 급박 하게 되었다. 이때 홍수전의 부하 장수인 이수성은 군대를 이끌고 항주를 공격하였다. 항주는 양자강 이남의 주요거점으로서 관군에게는 군량 창고와 같은 요충지다. 놀란 관군이 포위병력의 5분의 2를 갈라 급히 항주를 구원하게 하니 천경의 포위는 저절로 풀어지고 말았다.
이를 목표 이전법이라 한다. 동일 목표물을 향해 싸우다가 적이 매우 강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과감히 목표를 돌리는 것이 좋다. 적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심한 출혈을 무릅쓰고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국지적인 전투에서의 승리에만 매달리지 말고 전체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작은 싸움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도 상관없다.
적이 쳐들어온다고 해서 적의 정면만을 보고 막으려 하지 말고 다른 측면도 살필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현대만큼 사고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시대도 없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