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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난진(以假亂眞)
  • 호남매일
  • 등록 2021-06-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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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짓 모습으로 진짜를 혼란시킨다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이가난진(以假亂眞)’ 이 계략은 ‘가짜를 보여 진짜를 감춘다’는 ‘시가은진(示假隱眞)’과 같은 ‘시형법’에 속하지만 ‘시가은진’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계략이다.


전쟁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상(假像)’을 만들어내어 자기 쪽의 진정한 의도를 감추려 한다.


1947년 겨울, 등소평(鄧小平)이 이끄는 군대는 황하 북안에 당도했다. 황하 남안에 주둔하고 있던 국민당 군대의 불침 병은 야간에 탐조등을 비추다가 북안 수면 위에 쇠 투구를 눌러쓴 병사들이 소리 없이 남안 쪽으로 헤엄쳐 오는 것을 발견했다. 국민당 군의 지휘관은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명령했다.


“공산군의 도하 부대가 사정권 내에 들어오면 대포를 발사해서 적을 황하 속에 모조리 수장시켜 버려라!”


도하 부대는 점점 남안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윽고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총과 대포가 발사되었다. 강 위로 쇠 투구가 튀어 오르고 선혈이 순식간에 강을 붉게 물들였다.


그런데 갑자기 국민당 군대의 등 뒤에서 격렬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국민당 군대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실제 상황은 이렇게 된 것이었다. 공산군의 주력은 일찌감치 밤을 틈타 상류에서 배와 뗏목으로 황하를 건너와 기다리고 있다가 등 뒤에서 공격을 가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 공산군은 적장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도하 부대란 사실 표주박 위에 쇠 투구를 묶은 다음 그 안에 붉은 물감을 가득 채운 돼지 오줌보를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표주박 위에는 돼지 창자를 매달아 연결했다. 이 ‘이가난진’의 계략을 알고 난 포로들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이가난진’을 실행에 옮기려면 먼저 모든 가능한 조건을 이용,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여 적을 착각에 빠뜨려야 한다. 그런 다음 ‘진짜’로 진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만약 진짜 같지 않으면 적이 그 허점을 역이용하게 되어 심각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속이면서 속이지 않는 것처럼 하니 실상 그것은 속이는 것이다.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속이는 것이다. 속이는 것은 오래 못가서 쉽게 발각된다. 그러므로 없는 것은 영원히 없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변하는 것은 가짜가, 진짜로 변하는 것이고, 허가 실로 변하는 것이다.


가짜로는 적을 패퇴시킬 수 없고, 가짜를 진짜로 변화시켜야 적을 패퇴시킬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둔 연합군 측의 기만전술은 일품이었다.


독일 침공에 대한 연합군의 반격은 유럽 대륙으로의 상륙작전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지점은 영불해협을 사이에 둔 프랑스 까레해안 아니면 노르망디 해안이 될 것 이라는 것은 군사전략의 초보자라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과연 어디냐는 것이었다.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지점만 안다면 전체 예비대를 전진 배치하여 연합군을 충분히 바다에 밀어 넣을 수 있다고 보았다.


연합군 역시 결집된 방어력 앞에서는 실패한다는 결론이 나서 어떻게 하든지 독일군의 전력을 분산시켜야만 승산이 있었다. 이때부터 양 진영의 불을 뿜는 첩보전이 전개되었고 연합군 측은 여러 종류의 기만전술을 펼쳐나갔다.


우선 독일군을 시실리로부터 축출한 용장 패튼을 3군사령관으로 임명하였는데, 사령부가 영국 켄트주에 있는 것처럼 라디오 시그널을 보내 아직 편성도 되지 않은 3군이 상륙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 독일 측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패튼이었으므로 상륙작전이 벌어 지면 분명히 그가 선두에 선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여겨 이를 역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몽고메리 사령부를 5월 중순에 포츠머츠에서 런던 남부로 이동한 것처럼 가장하여, 까레 해안으로의 상륙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도록 유도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미는 술책은 고무 병기에서 절정을 이룬다. D데이가 임박해지자 영국 동남부에 대한 독일 공군의 정찰비행은 한층 강화되었다. 그들은 영국 공군의 굼뜬 출격과 엉터리로 쏘아대는 고사포술을 비웃으며 항공촬영을 했는데, 독일군이 모두 찍어가도록 영국군이 일부러 허술하게 대응했다는 사실을 알 까닭이 없었다.


도비항구에 집결된 상륙용 주정을 본 독일 해군은 이와 같은 배로는 노르망디까지 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까레 해안이라고 판단하였다. 켄트 벌판에 집결한 기갑사단은 더욱 가관이었다. 사진에는 엄청나게 많은 전차와 대포, 군용트럭이 촬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병기들은, 실은 모두 고무로 만들어 공기를 집어넣은 가짜였다. 샤먼 전차는 풍선처럼 바람으로 조작되었고, 25파운드 대포는 바람을 뺀 뒤 접을 수 있었다.


이 가짜 무기들은 밤이면 트럭 위에 구겨져 다른 지역으로 실려 갔다. 수많은 가짜 글라이더를 집결시켜 놓고는 숲속에 전쟁물자가 가득 들어 있는 것처럼 트럭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며 독일군의 판단 착오를 유도한반면, 상륙작전을 위한 진짜 발진기지와 전투 장비는 철저히 은폐·위장하여 있으면서 없는 것처럼 꾸몄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막의 여우라 불리는 롬멜도 처음에는 노르망디 상륙을 강력히 주장하다가 끝내는 까레로 헛짚게 되었고, D데이에 임박해서는 아내의 생일 축하를 위해 전선을 이탈하는 뼈아픈 실책까지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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