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보리수 열매가 붉게 맺힌 여름날이다. 나주에 사는 벗의 마당에 주렁주렁 매달린 보리수 열매를 따 먹었다. 붉은 보리수 열매를 입안에 가득 털어 넣는다.
보리수나무를 둘러싸고 톡! 톡! 씨앗 뱉어내는 소리,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소리다.
보리수 열매를 따다 주변을 둘러본다. 한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벗의 집에는 꽃들이 마당에 수를 놓았다. 접시꽃은 갖가지의 색으로 들어오는 길을 아름답게 해 주었으며, 마당 안쪽 화단에 자리 잡은 글라디오스는 제철이다.
지고 있는 양귀비 옆에 다알리아, 수레국화, 안개꽃, 송엽국, 목 수국, 마지막 봄을 지키는 장미도 아름드리 정원에 자리 잡았다.
벗과 마당을 한 바퀴 돌며 꽃들과 하다 보니 해넘이 시간이 되었다. 벗과 음식을 나누며 와인 한잔을 마신다. 음식을 나누는 정은 따스하다. 나주 벌판의 해넘이를 바라보며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최근에 갑작스럽게 떠나신 임지호 요리연구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자연 요리 연구가 임지호가 심장마비로 세상과 이별했다. 임지호의 요리철학과 인생 이야기가 담긴 ‘밥 정’이라는 영화를 어버이날에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았다. 영화의 영상미도 아름다웠으며 임지호 요리 연구가의 진솔한 삶의 그대로 드러나 마음에 남는 영화였다.
‘밥 정’ 영화를 다 보지 못해 줄거리를 찾아보았다. 임지호 요리연구가는 이야기한다. “어느 날 집에 계신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전국을 떠돌면서 부모의 흔적을 찾아다녔어. 어머니의 그리움의 여행을 언제 끝낼 것인가 그건 나도 궁금해” 라는 임지호 요리연구가의 삶에 대한 숙연함과 진솔함이 보여주는 독백이다.
감독의 말을 덧붙이자면 “세상의 쓸모없는 것이 없다.” 라는 요리 연구가 임지호의 인생이야기 라고 하였다. ‘밥 정’이라는 제목 속에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다. ‘밥 정’이 영화가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감독의 말은 임지호 요리연구가 뿐만 아니라 10년 동안 영화를 함께 만들면서 음식은 소통이라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라고 하였다.
임지호 요리연구가의 이야기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훌륭하다.” 는 말에 울컥하였다.
음식은 소통의 도구다. 우리의 삶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임지호 요리 연구가의 음식에서 놀라운 것은 일반인이 먹지 않는 풀로 요리한다.
지리산 할머니에게 음식 대접을 하는데 돌덩이를 가져와 그 위에 나뭇잎과 들풀로 세팅을 한다. 훌륭한 한상이 만들어지자 음식을 드신 할머니는 “맛있네.” 하시면서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임지호 요리 연구가는 세분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낳아 주신 어머니, 길러주신 어머니, 마음을 준 어머니를 통해 삶을 배웠다.
그런데 지리산에 사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자 임지호 요리 연구가는 귀한 재료를 준비해 눈에 보이는 음식 103가지와 눈에 보이지 않는 5가지(거짓이 없어야 함, 부지런함, 허영심, 평정심, 매의 눈)를 담은 108가지 요리를 만든다.
불교의 108가지의 의미보다는 인체와 관련된 108원소가 들어간 요리는 얼굴도 못 본 생모, 임종을 보지 못했던 두 어머니를 고해와 참회가 담긴 요리다. 3일 동안 쪽잠을 자며 만든 요리로 마루에 제사상을 차리고 세분의 어머니를 위해 절을 올린다.
임지호 요리 연구가의 ‘밥 정’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대사는 “이 세상의 어머니가 다 어머니다. 내가 배운 것은 어머니의 손에서 나오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지. 음식이란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주고 데워주는 것이지.” 임지호 요리 연구가는 돌아가신 세분의 어머니를 영혼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숭고함이 느껴진다.
12세부터 어머니를 찾아 떠났던 삶의 여행에서 임지호 요리연구가는 길에서 만난 세상의 어머니에게 배운 요리가 가장 훌륭한 음식이다. 바로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라는 것이다. 밥 정은 임지호 요리 연구가의 10년의 삶에 대한 여정으로 음식은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준다는 것이여 하는 말에 울컥한다.
여름이 오는 길목에 마당 넓은 집에서 잘 놀았다. 벗은 마당에 핀 글라디오스 세송이를 잘라 주었다.
꽃은 우리 집 거실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꽃보다 여름이 왔다고 국수 한 그릇이라도 말아 먹자는 정이 담긴 말이 오랫동안 자리를 잡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