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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시지불용(用而示之不用)
  • 호남매일
  • 등록 2021-07-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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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쓸 수 있으나 쓸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정랑 중국고전평론가


‘손자병법’ ‘계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용병의 기본 원칙이 제시되고 있다. ‘용이시지불용(用而示之不用)’


용병은 적을 속이는 ‘궤도‘다. 그런 까닭에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쓸 수 있으면서도 쓸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가까운 곳을 노리고 있으면서 먼 곳에 뜻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먼 곳을 노리면서 가까운 곳에, 뜻이 있는 것처럼 꾸민다.


적에게 이익을 줄 것처럼 유인해 끌어내고, 적을 혼란 시켜 놓고 공격한다. 적의 병력이 건실하면 내 쪽에서는 태세를 정돈하여 대비하고, 적이 강하면 자중하며 정면충돌을 피한다. 적을 화나게 만들어 어지럽히고, 저자세를 취하여 교만하게 만든다.


적이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집적거려서 피곤하게 만들고, 적이 서로 친밀하면 이간시켜야 한다.


이 책략의 요점은 이렇다. 공격할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일부러 공격하지 못하는 척한다. 어떤 계략을 쓰려고 하면서 일부러 쓰지 않을 것처럼 또는 쓸 수 없는 것처럼 가장하여 적을 현혹하고, 그 틈을 엿보아 행동을 취한다.


‘고시원(古詩源)’에 보면 “날려면 날개를 접어야 하고, 달리려면 다리를 구부려야 한다. 잡아서 물려면 움켜쥐어야 하고, 꾸미려면 바탕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용병에 능한 자는 계략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고, 자신의 의도 때문에 여러 사람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용이시지불용’의 목적은, 상대로 하여 나를 의심하지 않게 하여 나에 대한 대비를 갖추지 않도록 해놓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가 불시에 기습을 가하는데, 있다.


‘용이시지불용’의 구체적 형식은 복합적이다. 정책 결정자는 시기·흐름·적의 상황에 따라 이 계략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시지불용‘은 ‘용(用)’을 위한 것이요, 적이 무방비인, 때와 장소를 더욱 잘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역사상 가장 치밀하게 보안을, 했던 자는 누구일까? 아마 묵돌(冒頓- 기원전 209년-174년)일 것이다. 묵돌이 비밀리에 꾸몄던 공작은 무엇이었나? 반란이었다. 그것도 친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려는 것이었다. 묵돌은 본디 태자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른 여인을 사랑하여 아들을 낳자 그 아이를 태자로 세우려 했다.


우선 월지(月氏)와 동맹을 맺으면서 그 징표로서 묵돌을 인질로 보내고는 일지를 기습했다. 월지의 손을 빌려 묵돌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묵돌은 월지의 명마를 훔쳐 타고 탈주하여 무사히 돌아왔다. 아버지는 장하게 생각하여 죽일 생각을 접었다.


그러나 묵돌은 아버지의 음모를 알았기에 기회를 엿봐 아버지를 시해하고 계모와 어린 동생들도 죽이기로, 결심했다.


반란은 엄청난 대사이므로 단독으로 거사할 수는 없다. 반드시 공모자가 있어야 하며, 또한 그 공모자와 먼저 상의해야 한다.


그런데 실패할 위험성은 바로 그 부분에 있다. 그런데 묵돌은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거사하여 성공한 사람이다.


묵돌의 방법은 ‘조건반사’였다. 그의 부하들에게 ‘조건’만 주어지면 아무런 생각 없이 즉각 ‘반사’가 되게끔 조련시켰던, 것이다.


무엇으로 ‘조건반사’를 조련시켰는가? 그것은 명적(鳴鏑)이었다.


명적이란 일종의 신호용 화살로서 발사하면 공기의 저항으로 삐~ 소리가 난다. 묵돌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가 명적을 쏘는 곳으로 따라 쏘지 않는 자는 목을 벤다!”


묵돌은 부하를 이끌고 사냥을 나갔다. 날아가는 새와 들짐승을 향해 명적을 발사했다. 기병 중에 따라 쏘지 않는 자는 즉시 목을 베었다. 얼마 후 묵돌은 자신이 타고 다니던 명마를 향하여 명적을 발사했다. 대장의 명마이므로 개중에 망설이는 자가 있었다. 묵돌은 가차 없이 또 목을 베어버렸다.


얼마 후 묵돌은 자신의 부인을 향하여 명적을 발사했다. 부하 중에 또 망설이는 자가 나왔다. 묵돌은 여지없이 또 목을 베었다. 얼마 후 묵돌은 아버지 두만선우(頭曼單于)의 명마를 향하여 명적을 날렸다. 부하들은 일제히 두만의 명마를 향해 화살을 당겼다. 묵돌은 ‘조건반사’의 조련이 완성되었음을 알았다. 이제 거사할 때가 된 것이다.


어느 날 묵돌은 아버지를 따라 사냥에 나섰다. 기회를 엿봐 별안간 아버지를 향해 명적을 발사했다.


부하들은 사전에 반란에 대해 전혀 몰랐던 상황에서 전혀 거리낌 없이 반란 행위에 참여하여 명적이 향하는 곳으로 즉각 일제히 화살을 당겼다.


이로써 묵돌은 흉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최초의 선우가 되었다. 한나라가 초기에 흉노와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맺은 이유도 실상은 묵돌의 예봉을 피하려던 것이었다. 징기스 칸은 묵돌의 후예다.


1941년, 일본 해군 함대는 태평양 미군 함대 기지인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일련의 위장전술을 펼쳤다.


호화 유람선 ‘다쓰다마루(龍田丸)’를 미국으로 보내 교포들을 철수시키고, 해군 사관학교 생도 3백 명을 함대 수병으로 복무시켜 12월 5일과 6일 이틀간 유람케 하면서 함대가 항구에 정박해있는 것처럼 가짜 무전을 쳐서 미국 정보원들을 속였다.


이런 보기들은 모두 ‘용이시지불용’의 구체적인 운용이었다. 지휘관은 전쟁과 관련한 각종상황, 특히 적의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분석하여 본질을 발견하되, 적의 어떤 행동을 다른 행동들과 떼어놓고 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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