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의회가 개원 이래 활동 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향후 발전적 역할을 모색하고자 추진 중인 의회 30년사(史) 발간 사업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예산 적정 여부, 용역 계약을 둘러싼 의혹, 표절 등 낙찰 업체 역량 논란까지 일면서 '권한 강화에 따른 새로운 의회상 정립'이라는 취지마저 무색케 하고 있다.
18일 광주 북구의회에 따르면, 의회는 지난 4월30일 지역의 한 민간 연구단체 A사단법인과 용역 계약을 맺고 '30년사 발간'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1~8대 의회의 활동 경과와 성과를 되짚어보고, 지방자치법 개정안 내년 시행을 앞두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의회는 A사단법인과 '400여 쪽 안팎의 국배판 책자 50부, 편집 원고 전자문서(PDF·HWP파일) 등을 제출한다'는 내용의 수의 계약을 맺었다. 용역 예산으로는 구비 2130만 원이 쓰였다.
그러나 의회 내에선 '아예 안 한다면 몰라도 예산이 터무니 없이 적다'는 이견이 나왔다. 문서고 보관, 업무 참조, 국회 도서관·북구청·의정동우회 등 유관기관 배포, 대민 홍보 등 수요를 고려할 때 200부는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2년에 1번 꼴로 나오는 북구의회 의정백서는 통상 150~200부를 제작한다.
다른 지방의회와 비교해도 발간 부수·예산 규모가 지나치게 적다.
광주 광산구의회는 예산 6000만 원을 들여 1000여 쪽 분량의 '30년사' 200여 부를 펴내기로 했다. 광주시의회는 500부(500여 쪽 분량) 규모로 편찬 사업을 추진 중이며 투입 예산은 5000만 원이다.
두 의회 모두 외부위원 평가까지 거쳐 '경쟁 입찰'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이처럼 적정 규모보다도 지나치게 적은 예산이 투입된 배경을 놓고 설이 분분하다. 일각선 다른 의회와 달리 경쟁 입찰 방식이 아닌 수의 계약을 맺은 점과 연결지어 '누군가 밀어준 업체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지방계약법 시행령 25조에 따라 수의 계약이 가능한 용역 추정가격 한도 2200만 원(부가세 포함)에 맞춰 예산을 짰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북구의회는 향후 추경예산을 편성해 추가 발간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수의 계약 요건에 맞추려 예산을 일부러 쪼갠 것 아니냐'는 꼼수 의혹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저예산 규모로 단독 낙찰을 받은 A사단법인의 역량·자질도 도마위에 올랐다.
과업지시서 상 '30년사' 성과물 제출 기한은 올해 6월30일까지였으나, 의회사무국은 A사단법인이 제출한 결과물을 반려하고 기한을 이달 말까지로 미뤘다.
내용 부실, 지나친 발췌, 무성의한 편집 ,연구물 표절 의혹 등이 반려 이유였다.
계약·과업지시서에 따라 A사단법인은 ▲편찬 구성안 기획 ▲역대 의회사 연구 ▲원고 집필·편집·디자인 ▲검수·발행 ▲지방자치 발전 방향 학술 연구·제언 등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개괄, 역대의회 연혁·의정활동 등이 담긴 1·2장은 의회사무국이 소장 중인 1차 사료를 넘겨 받아 그대로 베꼈다.
더욱이 3장(의회 성과·과제 등 평가), 4장(미래 발전방안 제시) 등에 수록된 내용은 학위 논문, 학술대회 자료집, 수 쪽 분량의 연구 논고 등 기존 연구기록물의 상당 내용을 발췌, 짜깁기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는 기존 연구내용 중 주어만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북구의회'로 바꾼 수준의 '표절'인 것으로 확인됐다.
급기야 의회는 지난 9일 간담회를 열고 A사단법인 대표 격인 모 교수를 불러 결과물 개선을 독려하기도 했다.
임종국 의회운영위원장은 "수정 보완 사항이 여러 번 있었는데 안 고쳐진 부분도 많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될 지, 이걸 다시 해야할 지 고민이 많다"고 꼬집었다. 또 "성의 문제 아니냐는 이야기도 계속 나온다"라고 질책했다.
또 다른 의원은 발췌·표절 내용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러면서 "지방자치 부활 30년의 역사를 (쓰는 일이고) 전액 삭감 위기에서 되살렸을 정도로 심사숙고한 예산이다"며 "애초 '증액해 제대로 된 틀을 만들자'고 했다면 협조했을 것이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해당 교수는 "여러 의견을 최종 제출 결과물에 반영하겠다. 특히 여기저기 문헌들을 좀 참고해서 발전 방안을 제시한 부분은 수정하겠다"고 해명했다.
기우식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의회사 발간물은 과거사 집대성 뿐 아니라, 평가와 전망을 담아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자치·의정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면서 "부끄러운 지방자치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혈세를 낭비한 것이다. 주권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