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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실실(虛虛實實)
  • 호남매일
  • 등록 2021-08-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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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와 실의 교묘한 운용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수도 없이 강조해왔지만 ‘병(兵)이란 궤도(詭道)다.’ 따라서 ‘허허실실’도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병은 속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전쟁에서는 각종 수단으로 적을 현혹하고 속인다. 허점이 있으면서도 튼튼한 척, 튼튼하면서도 허점이 있는 척한다.


또 허점이 있을 때 그 허점을 그대로 보여 적으로 하여 오히려 튼튼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고, 튼튼할 때 튼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적으로 하여 오히려 허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그 운용의 묘미란 실로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


삼국시대 때, 위(魏)나라는 농서 일대에서 촉(蜀)나라와 여러 해 동안 전쟁을 치른 후 군사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당시 위나라에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람은 바로 사마소(司馬昭)였다. 그는 동쪽을 정벌한 후, 오나라와 촉나라를 모두 토벌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계속 병사와 말을 늘려나갔다.


오나라를 치려면 넓은 강물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번거로운 일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사마소는 먼저 촉나라를 친 후, 다시 삼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하기로 했다.


사마소는 종회(鍾會)를 장군으로 삼아 관중(關中)의 군대를 통솔하고 몇 개 주에 주둔해 있는 군대의 힘을 모으게 했다. 종회는 명령을 받은 후 기세등등하게 촉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러 가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 주의 군대에 배를 건조하도록 명령했다.


그 주의 지휘관들은 조선소의 소장이 되어 큰 배를 만들기 시작했고, 해안 도시에 사람들을 파견해 항해사를 모집했다. 여기에는 오나라를 공격하려는 뜻이 명백히 드러나 있는 셈이었다. 이것은 먼저 촉을 공격하고 나중에 오를 공격하려는 최고 통치자 사마소의 의중과는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사마소는 급히 종회를 불러들여 그의 전법을 청취하게 된다.


종회는 “지금 동충서돌(東衝西突)의 계책을 쓰고 있다며, 직접 군대를 이끌고 촉을 치러간다면, 그들은 분명 오나라에 구원을 청할 것이라 그렇게 되면 두 나라의 전쟁이 세 나라의 전쟁으로 바뀌어 우리나라가 그 두 나라의 목표가 될 것이므로 지금 우선 배를 만들어 오나라를 치는 척하면, 촉나라는 경계를 늦출 것이니 1년 안에 배가 만들어지면 먼저 촉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킨 뒤 직접 배를 저어 오나라를 공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사마소는 종회의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했다. 그는 종회가 정말 주도면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위나라 경원(景元) 4년 가을, 종회는 드디어 군대를 이끌고 출전했다. 사마소는 성 밖을 벗어나 십리 이상이나 배웅을 했다. 종회의 이 ‘동충서돌’의 계책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배가 만들어지는 동안 오나라는 경거망동하지 못했고, 촉나라는 경계를 늦추었다. 위나라 군대는 이 틈을 타서 크게 사기가 진작되었고, 아주 빠른 속도로 촉나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자치통감·권155’에 나오는 역사적 실례를 또 살펴보자.


북위 효무제 때인 532년, 고환(高歡)은 이주조(爾朱兆)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허허실실’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주조는 수용(秀容-지금의 산서성 삭현 서부)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환의 대군이 진양(晉陽)을 떠나 멀지 않아 수용에 이를 것이라는 급보를 받았다. 이주조는 고환에게 패한 경험이 있는지라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식으로 서둘러 준비태세를 갖추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이 지나도록 고환의 군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고환은 이미 군영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이었다. 헛물만 움키고 만 이주조는 맥이 빠졌다.


십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염탐꾼으로부터 다시 지난번과 똑같은 소식이 전해져왔다. 의심하고 있을 수만 없는 노릇이라 이주조는 다시 만반의 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 차례 긴장된 분위기가 이주조의 진영을 휩쌌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고환이 다시 출병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이주조 자신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대비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과 마찬가지였다.


이주조는 설마 또 같은 상황이 일어나겠느냐며 긴장을 풀었다. 며칠 후 다시 고환의 군대가 진양을 출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주조는 다시 허겁지겁 군을 정비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허탕이었다.


이에 이주조는 고환이 관중과 조정의 반대세력에 맞서 병력을 집중하기 위해 고의로 ‘허장성세’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이주조는 고환에 대한 우려를 씻고 경계 태세를 완전히 늦추었다.


이주조가 경계를 늦추었다는 정보를 접한 고환은 자신의 계책이 성공했음을 알고 일거에 진군한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때는 마침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이었다. 고환은 이주조가 분명 밤에 잔치를 베풀 것이라, 판단하고 새해 첫날 이주조를 습격하기로 결정했다. 533년 정월 초하루, 고환은 정예병을 이끌고 이주조를 습격했다.


전혀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던 이주조 군대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고, 이주조는 적홍령(지금의 산서성 이석현)까지 도주 했다.


자신의 명이 다했음을 직감한 이주조는 부하에게 자기 목을 베어 투항해서 상을 타라고 했다.


부하들이 차마 하지 못하자 이주조는 자신이 타던 말을 찔러 죽이고 큰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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