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병서를 읽어보면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피하는 계책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반대의 뜻을 가진 ‘양단억장’도 매우 수준 높은 계략이다. 소순(蘇洵)의 ‘심술 心術’이라는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나의 단점을 과감하게 드러내어 그것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나를) 기피 하게 하고 장점을 은밀히 길러 (상대가) 그것(내 장점)에 가까이 접근하도록 해서 그 속에 빠지게 한다. 이것이 장·단점의 활용 술이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의 단점은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적이 의혹을 품고 기피 하게 하고, 나의 장점은 은밀하게 감추어두고 길러서 적으로 하여 그 큰 뜻을 파악하지 못하게 마비시켜 내 그물 속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이 장점 단점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다.
손빈과 전기(田忌)는 위(魏)나라를 포위하여 조(趙)나라를 구원할 때 위 군이 계속 한단(邯鄲)을 공격하여 힘을 소모하도록 만들기 위해, 일부러 무능한 장수를 보내 평릉(平陵)을 공격하는 척함으로써, 위의 장수 방연(龐涓) 으로 하여금 제나라의 지휘관을 무능하게 보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바로 ‘양단억장’이라는 용병 사상을 구체적으로 체현한 것이었다.
단점으로 장점을 가리고 장점을 숨겼다가 틈을 엿보는 것은 어떤 문제에 대해 과학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기술 역량의 발휘에도 적합할 뿐 아니라 전술상 교묘하게 ‘기정(奇正)을 활용하는, 즉 가장 졸렬한 수단으로 고차원의 행동을 감추는, 경우에도 적합한 모략이다.
한신(韓信)은 조나라를 격파한 전투에서 먼저 적의 정면에다 배수의 진을 펼침으로써 조나라 군대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조나라 쪽에서 한신이 용병술을 모른다고 비웃고 있을 때 한신이 이끄는 비밀부대는 은밀히 그들의 후방을 공격하고 있었다.
한신의 ‘배수진’은 병사를 ‘사지로 몰아넣어야 살려고 발버둥 쳐서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오합지졸 1만 병졸을 몰아세워 강물을 뒤로하고 진을 쳤으니 밀리면 물고기 밥이 된다. 그러니 그들은 사력을 다해 싸우지 않겠는가. 세상에 20만 대군을 이겼던, 것이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만일 몇 시간만 더 교전했다면 그 1만의 병졸은 전멸했을 것이다. 혹은 상대편이 일제히 고함을 질러 투항하면 살려준다고 했을 때 무기를 던지고 달려갈 병졸이 태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한신에게 2000명의 기병(奇兵)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조나라 병영으로 돌입하여 조나라 깃발을 모두 뽑고 한나라 깃발을 꽂았기 때문이다.
조나라 병사들은 본거지가 함락되었음을 깨닫고는 경악하여 이리저리 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승기를 잡아 한신의 군대가 밀어붙여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2000명의 기병이 관건이었다. ‘배수진(背水陣)‘ 혹은 ‘배수일전(背水一戰)’이 무슨 뜻인지 다들 잘 알고 있다. 알았다면 다음번 전쟁에서 당신은 배수진을 칠 담력이 있는가?
알다시피 한신도 배수진은 그때 한 번으로 그쳤지 그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적의 모습에 따라 그때마다 계속 변했기 때문이다.
나를 배우면 살고 나를 닮으면 죽는다.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보거나 논의하는 것들은 모두 관건이 아니다.
관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그 당시의 전제·조건·상황이다.
둘째는 성공한 자가 지난 10여 년 내지는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내공이다. 성공한 자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은 대개 둘째 항목은 결여, 되어 있고 첫째 항목은 모르고 있다.
그러나 유행처럼 한동안 맹렬하게 흉내를 내보지만, 결과는 헛수고다.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병법의 진수를 바로 터득하라는 말이다.
일부러 드러내는 것은 더욱 깊이 감추기 위함이다. 일부러 억제하는 것은 더욱 크게 떨치기 위함이다. 이것이 군사 변증법의 오묘한 이치다.
탱크 부대로 공격을 가할 때 단점의 하나는 목표가 너무 커서 그 행동 의도가 아주 쉽사리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군의 제3 근위탱크 군단은 1944년 키에프 전투에서 ‘상식을 벗어나’ 모든 탱크로 하여 동시에 전조등을 켜고 경보기를 울리며 적진으로 돌진하게 했다.
이는 야간 공격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미친 짓’ 그 자체였지만 결과는 놀랍게도 대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