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보슬보슬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다. 그림책을 들고 찾아갔던 살레지오 작은 도서관 앞마당에서 수녀님은 비를 맞으며 파를 심고 계셨다. 지금쯤 겨울김장 준비를 위한 배추를 심는 시기이다. 배추, 무, 파 모종을 정성스레 심고 계셔서 기척을 내 인사를 드렸다.
텃밭을 가꾸시는 수녀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깃 들여 있다.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보니 여름 내내 텃밭을 지켰던 옥수수, 깻잎, 고추가 앙상한 모습으로 제 할 일을 다 한 듯 텃밭 한쪽 귀퉁이를 지키고 있었다.
지산동 초등학교 내 작은 도서관은 사계절 우정 이야기가 피어나고 있다. 살레지오 작은 도서관 ‘마인’ 에서는 책밭, 꽃밭, 텃밭이라는 마을 활동가들이 아름다운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로 살레지오 초등학교가 떠난 자리에 ‘마인’ 작은 도서관이 탄생했다.
작은 도서관 마인에서 펼쳐지는 밭은 책밭, 꽃밭, 텃밭 3가지 스토리를 담았다.
첫 번째 스토리는 공터를 활용하는 텃밭이다. 마을 주민들이 협력하여 텃밭을 만들기 위해 흙을 나르고 작물을 심었다. 고추, 옥수수, 깻잎, 가지 푸성귀는 여름 반찬이 되어주었다. 텃밭에 처음으로 작물을 심어보고 가꾸어 보았다는 할머니는 싹이 나고 자라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 저녁에도 녀석들이 어떻게 자랐나 싶어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마인의 꽃밭이야기다. 이맘때쯤이면 봄꽃은 사라지고 가을꽃이 하나둘 피어나는 시기이다. 여름내 마당을 지켰던 백일홍, 메리골드 모습도 보였으며 가을을 기다렸던 코스모스는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햇살을 맞고 있었다. 텃밭 한쪽 모퉁이에 자리 잡은 나팔꽃이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풀밭에서 고개를 쏙 내 밀고 있다.
처음으로 꽃 밭, 텃밭을 가꾸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어 정겹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풀을 매는 것과 시기를 맞추는 것이다. 관장님은 텃밭을 운영해 보니 힘이 많이 든다고 하셨다. “보통일이 아니여. 농사짓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 하시며 손을 내저었다. 자고나면 풀이 나고 자고나면 풀이 웃자라 있어서 풀 뽑는 것이 쉽지 않다며 농약을 왜 하는지 알겠다며 쓴 웃음을 지으셨다
작은 도서관 ‘마인’ 관장님인 수녀님의 열정은 대단하다. 70세가 넘은 연세에도 컴퓨터, 프리젠테이션등 거침없이 일을 처리하시는 겸손, 배려, 추진력을 보면서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작은 도서관 마인은 책밭, 꽃밭, 텃밭을 만들어가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나눔이 있었다.
그동안 교육현장에서 어린이들의 마음의 꿈을 심어주었던 원장님, 마을 활동가인 코디네이트, 지역주민 등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고 도움을 주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책밭, 꽃밭, 텃밭이 움직이는 것은 비가 내리는 시간에도 텃밭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의 손길이다.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다. 봉선동 자식 집에 놀러 와서 소일거리를 찾으셨는데 동사무소에서 연결한 일터가 마인이다. 아주머니는 시간나면 달려와서 텃밭을 보살펴 준다. 작물을 가꾸는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씨앗만 뿌린다고, 싹만 꽃아 놓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배추, 무를 심었으니 벌레도 잡아줘야 하고, 배추도 짚으로 묶어 주어야 한다. 희망의 꽃이 피어나는 것은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 덕이다.
세 번째 이야기 책밭이다. ‘희망 꽃이 피었어요.’ 라는 주제로 꽃잎아파트, 오소리네 꽃밭 그림책을 안내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중에도 한 분 두 분 발걸음을 만나 마음 밭을 만들었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그림책을 이용해 나만의 책을 만들어 보는 시간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책과 안녕 하며 마음을 나누어야 하며 새롭게 만나게 될 나의 책에 나만의 스토리로 마음 꽃밭을 만드는 시간이다.
책 밭을 만나러 오신 분들은 어르신들이 많다. “오랫만에 가위를 잡아보네.”, “에구구 잘 될려나 모르겠어.” 하시며 종이로 오리고 접어 이야기를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소 근육 활동이 많아야 한다며 흥미를 보이시는 노란 옷을 곱게 입으신 할머니, 잘 배워서 손자와 함께 이야기 밭은 꾸미겠다는 젊은 할머니 등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시는 모습이 아름답다.
책밭, 꽃밭, 텃밭을 만들어가는 작은 도서관 ‘마인’은 삶의 주체인 내 것을 만들어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참 의미가 좋다. 내 것, 나의 것을 만들며 타인을 배려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 밭이 활짝 피어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