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모병정체(冒名頂替)’는 ‘다른 사람 또는 적으로 가장하여’ 일정한 작전 목적 또는 정치 목적을 달성하는 일종의 ‘시형법’이다. 가짜로 진짜를 감추고, 가짜로 진짜를 혼란 시키는 기만 책략 술의 운용 형식 가운데 하나다.
‘병경백자’ ‘혼자(混字)’에서 “군과 장수를 혼란 시키면 적이 알지 못한다. 적을 혼동시키기 위해 아군의 장수와 군대, 성과 진영 등을 위장한다. 적과 같은 깃발·갑옷·복장을 하고 틈을 타 적진 깊숙이 들어가 내부를 공격하여 적을 섬멸한다. 내 쪽에서는 구분할 수 있지만 적은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혼란에 정통한 것”이라고 한 대목과 같다.
이처럼 ‘가짜로 진짜를 혼란 시키는’ ‘이가난진(以假亂眞)’, ‘물을 휘저어 혼탁하게 한 후 물고기를 잡는’ ‘혼수모어(混水摸魚)’의 책략은 동서고금의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후한서’ 권45에 기록된 200년의 관도(官途) 전투를 보자. 당시 조조(曹操)는 항복해온 장수 허유(許攸)의 계책에 따라 오소(烏巢)의 양식을 탈취하러 가기에 앞서, 보·기병 5천 명을 원소(袁紹)의 군대 복장으로 갈아입히고 원소의 군대와 같은 깃발을 내걸게 하는 등 원소 군으로 위장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물으면 조조가 등 뒤에서 몰래 공격해올까 봐 군대를 더 보내 경계를 강화하는 것이라 대답했다.
원소의 군대는 이 말을 진짜로 믿고 이들의 행동에 주의하지 않았다. 조조의 군대는 원소 군의 식량을 불 지르고, 관도 전투의 주도권을 잡았다.
‘사기’ 권7·8과 ‘자치통감’ ‘한기’에 실린 역사적 사실을 보자. 기원전 204년 5월, 초(楚)·한(漢) 양군은 형양에서 1년이 넘게 대치하고 있었다. 형양성의 식량은 거의 바닥이 나 있었다.
한 군의 기신(紀信)은 어느 날 깊은 밤, 약 천 명의 부녀자들에게 갑옷을 입히고 솥을 지게 한 다음 성문 동쪽을 통해 빠져나가게 했다. 초군은 그들이 한 군인 줄 잘못 알고 사방에서 포위해 들어왔다.
이때 기신은 유방으로 변장하여 유방이 평소에 타던 수레에 앉아 마치 한 왕인 것처럼 하고 동문을 나섰다. 뒤따르는 한 군들은 일제히 “성안의 식량이 모두 바닥이 나서 한 왕이 투항하려 한다!”며 고함을 질렀다.
초군이 유방이 투항하기 위해 나오는 줄 알고 모두들 다투어 성 동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이 틈에 유방은 수십 명의 친위병사만을 거느리고 서문을 통해 탈출했다.
‘주서(周書’ ‘달해무전(達奚武傳)’에는 이런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남북조 시대 주나라 태조는 달해무(達奚武)에게 세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홍농(弘農-지금의 하남성 영보현 남쪽)에 가서 적의 정세를 염탐하도록 했다.
달해무와 부하들은 모두 적군의 복장을 하고서 적의 상황을 전면적이고 구체적으로 정찰했다. 태조는 염탐해온 정황에 근거하여 제(齊)나라 신무(神武)의 군대를 격파할 수 있었다.
1944년, 연합군은 적을 현혹하여 기습적으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 독일군의 방어력이 약한 노르망디에 상륙작전을 감행하면서, 정보 팀에서 참으로 희한하고 극적인 기만전술을 전개했다.
제임스 중위라는 사람을 몽고메리 장군인 것처럼 꾸며 일련의 기만술을 펼침으로써 적군의 판단 착오를 일으키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이것이 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음은 물론이다.
1944년 12월, 나치 독일 군의 친위대 중령 슐츠는 특공대를 이끌고 아르덴느 산림지대로 분산·침투하면서 특공대를 미군 헌병처럼 변장시켰다. 그들은 미군 작전 지역에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하여 교통에 불편을 주고 도로 표지판을 멋대로 바꾸는가 하면, 미군 전령병을 잡아 사살하는 등의 활동으로 연합군의 진공을 지체시켰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군도 이집트군으로 위장한 특공대를 이집트군 깊숙이 침투, 전세를 뒤집음으로써 서부 전선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모명정체’의 계략이 동서고금의 전쟁에서 그 예가 적지 않았음은 이상의 예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략은 전형적인 기만술이다.
이 계략은 흔히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결하고 있는 쌍방 모두가 기만술을 활용하려 하고, 또 온갖 방법으로 상대의 기만술을 간파하려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계략에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으면 전혀 상반된 결과가 빚어진다.
따라서 이 계략을 운용할 때 ‘적과 같은 깃발·갑옷·복장을 하고 틈을 타 적진 깊숙이 들어가 내부를 공격하여 적을 섬멸한다.
내 쪽에서는 구분할 수 있지만, 적은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혼란에 정통한 것’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것이다.
적의 외모·언어·생활습관 등을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함은 물론, 적의 구령이나 암호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적을 많이 알고 잘 알수록 상대에게 쉽게 간파당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