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형법으로 적을 속이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고 변화무쌍하지만, 목적은 적의 오판을 이끌어 내자는 데 있다.
‘병경백자’ 「의자 疑字」를 보면 “병법이란 반드시 적을 의심하게 만들어야 하며, 잘못 의심하면 반드시 패한다.”고 되어있다.
적이 의심하게 만들려면 나의 모습을 대와 장소, 그리고 적에 따라 변화시켜야 한다. 용병은 일방적일 수 없다.
한쪽의 유인계가 성공했다는 것은 곧 다른 한쪽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한다. 관건은 누가 높은 수를 구사하느냐에 있다.
‘나의 속임수로 상대의 오판을 유도하며’, ‘상대의 오판을 유도하되 상대가 그것을 실수로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 유능한 지휘관은 늘 적과 나의 정세를 깊이 있게 이해한 기초 위에서 ‘시형법’으로 적의 의심을 유도하여 오판을 일으키게 한다.
‘사기’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의 기록을 통해 그 본보기를 살펴보자. 흉노가 상군(上君)을 대대적으로 침입해왔다.
한 경제는 중귀인(中貴人-황제의 신임을 받는 환관)에게 이광(李廣)을 따라 병사를 통솔하여 흉노를 치게 했다. 중귀인은 기병 수십을 거느리고 제멋대로 달리다가 흉노병사 3인을 발견하자 어울려 싸웠다.
흉노병사는 원을 그리면서 돌다가 활을 쏘아 중귀인에게 부상을 입혔고, 나머지 기병들을 거의 전멸시켰다. 중귀인은 이광에게로 도망쳐왔다.
이광은 이 이야기를 듣고 말 했다.
“그놈들은 분명 수리를 쏘는 놈들일 것이다.”
그는 기병 백 명을 거느리고 그 3인을 급히 추격했다. 3인은 말을 잃고 걷고 있었으므로 수십 리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이광은 부하 기병들을 좌우로 전개시키고 이광 자신이 3인 중 둘을 쏘아 죽이고 하나는 포로로 잡았다. 과연 그들은 흉노의 수리를 쏘는 패들이었다.
사로잡은 놈을 묶은 뒤 말에 올라 흉노 쪽을 바라보니 기병 수십 명이 보였다. 적은 이광의 군을 보자 자신들을 유인하기 위한 기병이라 생각하고 깜짝 놀라 모두 산속으로 올라가 포진했다.
이광의 부하들도 크게 놀라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이광은 오히려 전진을 명령했다. “우리는 부대에서 수십 리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 섣불리 달아나려 하다가는 흉노의 추격을 받아 다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그대로 머무르면 흉노는 우리들이 대장군에 앞서 자신들을 유인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흉노와 겨우 2 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다시 명령했다. “모두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어라.”
부하들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흉노는 수도 많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습격하면 어찌합니까?”
이광이 대답했다. “적은 오히려 우리가 도망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안장을 풀어 달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면, 우리가 자신들을 유인하기 위한 기병이라고 생각한 그들의 당초 판단을 굳혀줄 것이다.”
흉노의 기병은 섣불리 쳐들어오지 못했다. 흉노의 진중에 백마를 탄 장군이 군사들을 순시하고 있었다.
이광은 말을 타고 기병 십여 명을 거느리고 돌격하여 그 장군을 사살한 다음, 다시 돌아와 안장을 풀고 누워 쉬게 했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지만, 흉노의 병사들은 계속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감히 쳐들어오지 못했다.
흉노의 병사들은 한밤중에 한나라 군이 매복해 있다가 밤을 틈타 흉노의 진지를 점령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모두 철수해 버렸다. 날이 새자 이광은 부대로 무사히 돌아왔다.
이광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적을 의심하게 만드는 계략을 썼기 때문이다. 만약 부하를 이끌고 황망히 도망치려 했다면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