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이이유지(利而誘之)’ 이 말의 출전은 ‘손자병법’ ‘계편’에 나온다. 그 뜻은 작전에 앞서, 또는 작전 중에 적의 탐욕스러운 심리에 초점을 맞추어 작은 이익을 미끼로 던져놓고 일부러 약점이나 파탄을 노출시켜 적으로 하여금 상황을 오인케 하고 미리 쳐놓은 그물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다.
손자 이전에도 정나라의 세자 홀(忽)과 제나라 희공(僖公)이, 이 방법을 사용하여 역성(歷城)에서 북융(北戎)을 크게 무찔렀다.
기원전 706년, 초나라 무왕(武王)이 수(隨)를 침략하자 수에서는 대부 소사(少師)를 보내 초와 동맹을 맺게 했다. 소사는 허풍이 세고 겉치레만을 중시하는 위인이었다.
초왕은 대부 두백비(斗伯比)의 꾀를 받아들여, 정예병들을 모두 숨겨놓고 늙고 약한 병사들만 열병시켜 소사가 보는 앞에서 사열식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소사는 이 정도 군대라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박살 낼 수 있다고 판단, 돌아가는 즉시 수후(隨候)에게 초와 싸우자고 건의했다.
기원전 704년, 초·수 양군은 속기(速杞)에서 전투를 벌였다. 초나라는 관습에 따라 왕이 좌군 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것은 곧 좌군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의 대부 계량(季良)은 초의 우군이 약한 곳이니 우군을 치자고 했다. 우군이 무너지면 좌군도 자연히 무너질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소사는 계량의 의견에 반대했다. “초왕이 있는 좌군을 치는 것이 낫습니다. 초군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수후는 소사의 말대로 초의 좌군을 공격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기원전 700년, 초나라는 교(絞-지금의 호북성 운현 서북쪽)로 진군했다. 양쪽 군대는 교성의 남문에서 대치했다. 교군은 성문을 굳게 닫고 수비로 일관했다.
이를 보고 초의 대부 막오굴하(莫傲屈瑕)가 말했다. “교는 약소하고 경솔합니다. 경솔하다는 것은 계략이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그는 한 가지 꾀를 건의했다. 먼저 일부 병사들을 나무꾼으로 변장시켜 교군을 유인한 다음, 매복으로 적을 섬멸하자는 것이었다.
초왕은 굴하의 건의를 받아들여, 일부 병사들을 나무꾼으로 변장시켜 산에 올라가 땔감을 가지고 오게 시켰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교군을 자극하여 그들이 성에서 나와 나무를 빼앗아가도록 했다.
그와 아울러 병사들을 두 갈래로 나누어 산속에 매복시키는 한편, 퇴로를 차단했다. 단 하루 동안에 교군은 나무꾼으로 변장한 초군을 30명이나 잡아 나무를 빼앗았다.
다음날, 교군은 앞을 다투어 나무꾼으로 변장한 초군을 잡기위해 성을 나왔다. 교성 북문 밖 산속에 매복해 있던 초군은 교군이 쫓아오자 일제히 일어나 기습을 가했다. 다른 한 부대는 퇴로를 끊어놓고 성을 맹렬히 공격했다. 초 무왕은 교의 항복을 받은 후 군대를 철수시켰다.
처음에 교가 성을 굳게 닫고 수비했을 때는 초군이 아무리 강한 공격을 퍼부어도 끄떡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끌었더라면 초군은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오굴하가 성안에 땔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땔감으로 적을 유인하자 교군은 그 미끼에 걸려들고 말았다.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교군이 낚싯바늘에 걸려든 것은 성안에 땔감이 떨어져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무꾼으로 변장한 초군이 병사들의 호위도 받지 않은 채 삼삼오오 산에 나무를 하러 나오는 모습을 보자 교군은 저들의 나무를 빼앗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 무왕은 며칠 동안 땔감·옷·식량 따위를 빼앗아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교군의 배짱은 갈수록 커졌다.
그들은 보잘 것, 없는 이익 때문에 이성이 흐려져, 초군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결국은 나라가 망했으니 이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니겠는가!
‘이이유지’의 계략을 실시할 때는 조건이 따른다. 이익을 탐하는 자는 유인하여 낚싯바늘에 걸려들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탐욕스럽지 않고 어리석지도 않은 적에 대해서는 이 계략은 효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어떤 전쟁이 되었건 당사자들은 모두 이익을 위해 싸운다. 따라서 총명한 장수는 언제든지 방법을 마련하며 이익을 탐내는 적을 유인한다.
이해관계는 언제나 긴밀하게 얽혀있다. 이익 그 자체에 손해가 잠재해 있게 마련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익에 크기가 있고 손해에도 경중이 있으므로 반드시 전체 국면을 잘 고려하고 저울질하여, 이익이 크고 손해가 작으면 실행에 옮기고 그렇지 않으면 섣불리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손자는 이에 대해 ‘지혜로운 자의 생각은 언제나 이해관계와 맞물려 돌아간다.’는 말로 요령 있게 압축하고 있다.
군사적 행동에 앞서 이해의 두 측면을 주도면밀하게 살펴 맹목성을 최대한 줄이고 밑천을 갉아먹는 행위는 아예 하지 않거나 부득이한 경우에도 최소한이 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이해관계가 한데 얽혀있는 전쟁터에서 적에 대해 ① 어떻게 이익으로 유인하며, ② 유인해내면 어떤 방법으로 섬멸할 것이며, ③ 내 쪽은 어떻게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피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는 오래된 것들이긴 하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현대 전쟁도 이해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고대의 전쟁과 다를 바 없다. 이해의 변증법적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여 ‘이이유지’의 계략을 활용할 것인가는 군사 전문가들이 매우 중시해야 할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