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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미술관에서 발견하다
  • 호남매일
  • 등록 2021-10-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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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바람이 불렀어. 그래 나를 불러낸 것은 가을바람이었어.” 그 가을바람을 타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바람이 안내해 준 곳은 담양을 지나, 곡성을 지나 남원에 위치한 시립미술관이다. 미술관 가는 길에 펼쳐진 하늘은 푸른 우물 하나를 담았다. 푸르른 하늘에 누가 붓 칠을 했을까? 푸른 하늘에 솜털 같은 구름이 변화무쌍하다. 구름만 보다가 하루를 보내도 좋을 것 같은 날씨, 정말 날씨가 다하는 가을날이다.


남원하고도 남쪽 춘향테마파크를 지나 푸른 하늘 산자락에 내려앉은 김병종 시립미술관은 물위에 하얀 배를 띄워 놓은 것 같다. 물위에 가만히 떠 있는 미술관, 나지막한 산에 물이 차오르는 호수에 미술관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술관 쪽으로 가는 길 사뿐히 발을 내딛는 순간 쑥부쟁이 군락지가 보인다. 쑥부쟁이 꽃, 와락 껴안고 싶다. 쑥부쟁이 한 아름 안고 시골길을 사푼사푼 걸었던 벗들은 어디에서 이 가을을 견디고 있는지. 그립다. 쑥부쟁이를 가득 담고 있는 미술관으로 들어간다. 수변 위를 거닐 듯 하얀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김병종 화가하면 꽃잎이다. ‘생명의 노래’ 라는 그림은 마당을 거닐고 있는 학이 커다란 꽃잎을 물었다. 동백꽃일까? ‘숲에서’ 그림 속에 학은 매화 꽃잎을 물었다. 김병종 미술관은 남원시에서 직접 운영하며 김병종 화가가 기증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김병종의 자신의 작품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산들아/ 아직도 청정한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느냐./ 물들아/ 여전히 그 한 자락을 휘감아 흐르고 있느냐./ 풀들아 숲들아/ 고요히 눕고 힘차게 일어서느냐./ 어린 생명부치들을 아직도 네품에 거느리고 있느냐. 아아 조선의, 땅아. 바람아, 물들아/ 애잔하게 스러져 가는 것들아/ 오늘 서툰 붓 한자루에 실어/ 내 너희 안부를 묻노니.’ 김병종은 숲, 자연, 동물을 담았다. 그의 시를 보니 그림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김병종 그림은 편안하게 안아준다. 두 번이나 방문한 미술관에 인적은 끊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촘촘하게 그림을 만난다. 누군가는 그림 앞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다. 나도 어느 틈에서 그들과 함께 그림에 취한다. 김병종 미술관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은 2층 물멍(물을 멍하게 바라보는 곳)을 하는 공간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또 하나의 미술이며, 사색의 공간이다.


김병종 미술관에서는 느릿하게 걷는다. 닭과, 대화하다, 나무와 대화하다, 꽃과 대화하다. ‘풍죽’ 그림 앞에 서 있으면 대 숲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져 온다. 그래서 김병종 미술관은 좋다. 김병종 화가를 만난 것은 그림이 아니라 글이 먼저다. 화첩기행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미술관에서 그림으로 만난 김병종은 단순함이 주는 미학이다. 학이 노닐 듯이 마당을 걷는다. 먹은 자연스럽게 종이에 스며든다. 한지를 덧붙였을까? 단순하게 보인 그림이 겹겹이 이야기가 스며있다.


쿠바, 라틴아메리카, 튀지니 등에서 만난 풍경은 우리의 자연과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카리브의 바다’는 색 물결이 넘친다. 카리브에서 물고기와 소년은 함께 논다. ‘카리브 소년’ 그림 앞에 서면 아이와 함께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것 같다. 담백하다. 김병종의 그림은 쉽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김병종의 작품을 좋아하며 사람들은 즐겨 미술관을 찾고 작품에서 생명의 술과 바다를 만난다.


김병종 기증 작품 특별전을 ‘튀지니의 여름’ 앞에 선다. 그 옆 자리를 비켜서면 김병종의 글이 있다. ‘북아프리카는 하얀 아프리카다. 눈이 시리도록 희디흰 아프리카다.’ 김병종의 화첩에서 본 아프리카는 푸름을 담은 하얀색이다. 그 색이 좋아 오랫동안 서 있다. 나도 아프리카에 온 것이다.


어린아이가 그린 같은 그림, 누군가는 고졸미라고 표현하였다. 고졸미는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데서 나오는 아름다움’ 라고 하였다. 김병종의 그림은 단순함에서 오는 아름다움, 소박함에서 오는 편안함, 먹물과, 한지, 물감임 뒤섞이는 동양의 화폭이다.


이 가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할 때 미술관을 찾아보자. 그 절절한 외로움이 당신을 미술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김병종 미술관에서 ‘생명의 숲과 바다’를 만나 보자. 그림 앞에서 마음이 익어가는 가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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