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의 간접 원인으로 꼽히는 감리 계약을 원청인 현대산업개발(HDC)이 주도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특히 현대산업개발 공무부장은 참사 직후 감리를 불러 "감리 일지를 (평소에 작성해온 것처럼) 쓰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정지선 부장판사)는 1일 오후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건축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학동 재개발 정비 4구역 시공업체, 하청·재하청 업체 관계자와 감리 등 공범 7명에 대한 제2회 공판기일을 열었다.
법정에서는 감리 겸 모 건축사무소 대표 차모(59·여)씨를 상대로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검사는 현대산업개발이 해체 공사 감리 선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참사 당일 일지 작성을 지시한 정황을 규명하기 위한 질의를 이어갔다.
차씨는 "감리 계약 체결 전반을 현대산업개발 공무부장 노모(57)씨와 협의했다. 애초 상주 감리 비용으로 1억 5000여만 원을 제시했으나 노씨가 5000만 원 이하 계약을 제안했다. 5000만 원이 넘어갈 경우 조합원 회의를 거쳐 수의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차씨는 "이 제안에 따라 4956만 원에 (조합과) 감리 계약을 체결했다. 노씨가 조합 측 심부름을 한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또 "현대산업개발이 해체 공사를 전담하는 것으로 알았다. 불법 재하도급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차씨는 "참사 당일 노씨의 연락을 받고 현대산업개발 현장 사무실에 갔다. 노씨가 공사 관련 자료를 건네며 감리 일지를 쓰라고 했다"고도 증언했다.
차씨는 실제 참사 다음 날 오전 3시 그동안 쓰지 않았던 감리 일지 7장 정도를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차씨는 또 신문 과정에 철거 현장 안전을 방치하고 지도·감독 의무를 저버린 혐의(안전 점검표 미작성, 해체 계획서 검토 소홀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다만, 실제 건물을 철거한 현대산업개발과 ㈜한솔 현장소장에게 작업 일보 제출을 요구했으나 받지 못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8일 열린다.
차씨와 함께 기소된 이들은 원청 시공업체 현대산업개발(HDC) 현장소장 서모(57)씨·공무부장 노씨·안전부장 김모(56)씨, 하청업체 ㈜한솔 현장소장 강모(28)씨, 재하청 업체 ㈜다원이앤씨 현장소장 김모(49)씨, 재하청 업체 ㈜백솔 대표 겸 굴착기 기사 조모(47)씨 등이다.
이들은 철거 공정 전반에 대한 안전 관리·감독 소홀로 지난 6월 9일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에서 철거 중인 지하 1층·지상 5층 건물의 붕괴를 일으켜 시내버스 탑승자 9명을 숨지게 하고, 8명을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학동 재개발 4구역 내 주요 하청 철거 계약 구조는 ▲일반 건축물(재개발조합→현대산업개발→한솔·다원이앤씨→백솔) ▲석면(조합→다원·지형이앤씨→대인산업개발→해인산업개발) ▲지장물(조합→거산건설·대건건설·한솔) ▲정비기반 시설(조합→효창건설·HSB건설) 등으로 파악됐다.
철거 공사비는 불법 재하도급 구조와 이면 계약을 거치면서 3.3m²당 28만 원→10만 원→4만 원까지 크게 줄었고, 건물 해체 물량이 뒤에서 앞으로 쏠리는 수평 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날림 공사로 이어졌다.
/천기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