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재판에서 원청인 현대산업개발(HDC) 측이 철거 공사 관련 자료를 폐기·조작하거나 경찰 조사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철거 계획서와 다른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된 것을 알고서도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감추기 위해 각종 증거를 조작·인멸했다고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광주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정지선 부장판사)는 17일 302호 법정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건축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학동 재개발 정비 4구역 시공업체(현대산업개발), 하청·재하청 업체(㈜한솔·백솔) 관계자와 감리 등 공범 7명에 대한 제4회 공판기일을 열었다.
법정에서는 재하청 업체 ㈜한솔 현장소장 강모(28)씨를 상대로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검사는 원청인 현대산업개발 측의 안전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규명키 위한 질의를 이어갔다.
강씨는 "현대산업개발 공무부장은 해체 계획서 작성을 독촉하며 공사 일정에 관여했다.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 또한 해체 계획과 달리 (위험한 방식으로) 철거 공사가 진행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계획대로 공사를 진행하라거나 감리를 제대로 받으라고 지시한 적 없다"고 증언했다.
강씨는 "지난 5월 중 무너진 건물 철거 관련 회의를 현대산업개발 현장사무실에서 2차례 했다. 당시 계획과 다른 공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작성된 회의록 2건이 왜 없어졌는지는 모른다. 회의록은 현대산업개발이 관리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참사 당일 공무부장 지시에 따라 현대산업개발 대표가 있는 현장사무실에서 자신이 경찰에 출석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았던 내용을 요약 설명했다"고 설명했다.
또 "참사 사흘 전부터 당일까지 쓴 업무 보고서(장비 투입 내역 등 기록)를 공무부장에게 보고했으나 공무부장이 찢어서 버렸다"고 증언했다.
강씨는 "감리가 감리 일지를 평소에 쓰지 않았는데, 참사 당일 공무부장이 일지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이동식 기억장치(USB)에 담아 전해달라고 했다. 메일로 보내면, 디지털 포렌식을 했을 때 자료에 남을 수 있다며 USB 사용을 권유했다"는 취지로 증언하기도 했다.
강씨는 "굴착기 기사가 당일 과다 살수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현대산업개발은 민원을 잘 해결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절차라고 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기성급 지급, 지시 불이행 시 압력 고려) 현대산업개발 측의 살수 장비 추가 동원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철거 공정 전반의 불법 재하도급과 이면 계약 사실 또한 공사 관계자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씨와 함께 기소된 이들은 원청 시공업체 현대산업개발(HDC) 현장소장 서모(57)씨·공무부장 노모(57)씨·안전부장 김모(56)씨, 하청 이면계약 업체 ㈜다원이앤씨 현장소장 김모(49)씨, 재하청 업체 ㈜백솔 대표 겸 굴착기 기사 조모(47)씨, 감리 차모(59·여)씨 등이다.
이들은 철거 공정 전반에 대한 안전 관리·감독 소홀로 지난 6월 9일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에서 철거 중인 지하 1층·지상 5층 건물의 붕괴를 일으켜 시내버스 탑승자 9명을 숨지게 하고, 8명을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학동 재개발 4구역 내 주요 하청 철거 계약 구조는 ▲일반 건축물(재개발조합→현대산업개발→한솔·다원이앤씨→백솔) ▲석면(조합→다원·지형이앤씨→대인산업개발→해인산업개발) ▲지장물(조합→거산건설·대건건설·한솔) ▲정비기반 시설(조합→효창건설·HSB건설) 등으로 파악됐다.
철거 공사비는 불법 재하도급 구조와 이면 계약을 거치면서 3.3m²당 28만 원→10만 원→4만 원→2만 8000원까지 크게 줄었고, 건물 해체 물량이 뒤에서 앞으로 쏠리는 수평 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날림 공사로 이어졌다.
/천기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