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죽북 _손택수 作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살가죽만 남아 북이 된 소의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한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어머니가 그랬다
병든 사내를 버리지 못하고
버드나무처럼 쥐어뜯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흐느끼던 울음에도
저런 청승맞은 가락이 실려 있었다
책식주의자의 질기디 질긴 습성대로
죽어서도 여물여물
살가죽에 와 닿는 아픔을 되새기며
둥둥둥둥 지친 북채를 끌어당긴다
끌어당겨 연시 제 몸을 친다 <2003년>
소가죽으로 만든 북을 치는 소리를 들으며 ‘소’와 ‘어머니’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며 엮어나가는 시라 하겠다.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소는 참 불쌍한 동물이다. 살아서는 인간을 위해 수레나 쟁기를 끌다 주인의 채찍을 맞고 죽어서는 부위별로 팔려나가고 또 가죽은 북이 돼 북채로 맞는다.
“살가죽만 남아 북이 된 소의 /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한다” 살아서도 맞지만 죽어 북이 되어서는 더 얻어맞는다. 맞을수록 그 소리가 더 사람의 신명을 돋 우게 하는 역설.
인간의 논리로 보면 당연한 일이나 소의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얻어맞으니 말이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 어머니가 그랬다” 소가 어머니로 바뀐다. 아니 어머니가 바로 소다. 땡볕에 나가 남의 집 밭일거들며 마련한 돈은 노름꾼 아버지에게 다 빼앗기고, 게다가 술주정이라도 하면 발길에 차이기도 한다.
더욱 딱한 노릇은 소가 맞을수록 신명을 돋우듯 어머니도 애먹이던 서방이 병들면 내팽개쳐야 좋으련만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던 울음에도 / 저런 청승맞은 가락”처럼 울고있으니, “살가죽에 와 닿는 아픔을 되새기며 / 둥 둥 둥 둥 지친 북채를 끌어당긴다 / 끌어당겨 연신 제 몸을 친다” 소리꾼이 소리를 할 때 쇠북치는 고수의 장단에 맞춘다. 그 소리에는 한(恨)이 담겨야 제대로 된 소리꾼으로 대우받는다.
“채식주의자의 질기디 질긴 습성대로“ 소와 어머니는 질기고 고단한 삶의 숙명을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동일한 존재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가부장적 구조 하에서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고도 말 한마디 못한 채 순종하며 살았다.
살아서 채찍을 맞으며 남을 위해 몸 바친 삶을 마치고도 가죽만 남아 북채를 끌어당기는 소나 발길 질 해대는 아버지를 피하기보다는 주저앉아 받아들이는 어머니.
이들은 공통적으로 채식주의자일 수밖에 없어 아프고 고단한 삶을 운명처럼 온몸으로 끌어안고 소리를 낸다.
문득 아버지에게 무조건 순종하며 살던 채식주의자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손택수 시인(1970년생)
담양 출신으로 경남대 국문과 졸업.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