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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도 日 강제동원 사과 촉구"…故 이금주 회장 각계 추모
  • 호남매일
  • 등록 2021-1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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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시민단체, 추도사 통해 이 회장 마지막 길 함께 강제동원·우키시마호 폭침 피해자 등 빈소 찾아 추모

14일 오전 광주 서구 천지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장의 빈소에서 참배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2021.12.14.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고(故)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장의 빈소에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의 활동을 기억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추도의 마음이 전달됐다.



14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와 변호인단은 추도문을 통해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단체는 "지난 2002년 11월28일 열린 나고야 지방법원 14회 구두변론에서 첫 증인신문에 나선 사람이 이금주 회장이었다"며 "이 회장이 일본 법정에서 떨지 않고 증언 했던 기백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이어 "일본과 한국을 연결했던 통로가 이 회장이었으며 당시 서신을 보냈던 팩스 번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전후 책임을 묻는 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후지코시 강제연행·강제노동 소송을 지원하는 호쿠리쿠연락회' '재일대한기독교회고쿠라교회 목사' 등이 추도사를 보냈다.



빈소를 찾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등 추모객들도 이 회장에게 애도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회장과 양 할머니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동안 수십 차례 일본을 오가며 고락을 같이했다.



양 할머니는 "이 회장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해 수많은 고생을 했지만 힘들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며 "하늘나라에서도 강제동원 피해자를 살펴 줄 것이다"고 말했다.



또 이날 빈소에는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생존자인 장영도(88)씨가 찾아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은 1945년 8월24일 일본 마이즈루 항에서 발생했다. 해방을 맞아 일본에 강제동원됐던 조선인 등을 태우고 귀국하던 중 원인을 알수 없는 폭발사고로 침몰했다.



이어 1992년 소송이 제기됐으며 지난 2001년 8월23일 교토지방재판소가 일본 정부의 안전 배려 의무 위반을 이유로 생존자 위로금 지급 판결을 내렸지만 2003년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번복됐다.



장씨는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과 관련해 1900년대 이 회장을 처음 만났다"며 "당시 강제동원 등 인권문제를 꺼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회장은 당당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이 회장의 모습을 절대 잊지 않고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 영정 앞에 바치겠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일본에 남편을 잃은 이 회장은 1988년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를 결성하고 30년 넘는 기간 동안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앞장섰다.



이 회장의 뜻은 2009년 3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발족으로 이어졌으며 2019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이 회장은 지병 등으로 인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2015년 5월 손녀가 있는 전남 순천으로 거처를 옮긴 뒤 지역 요양병원에서 투병을 하던 중 지난 12일 사망했다.



이 회장의 발인은 15일 오전이며, 순천시립공원묘지에 안장된다.



/천기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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