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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설날을 보내며
  • 호남매일
  • 등록 2022-02-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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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설날 아침 거센 눈발이 날렸다. 몇 해 전 하늘나라 가신 엄마의 산소에 갔다. 주차를 하고 몇 발자국 되지 않는 산소로 발길을 옮기는데 바람이 매섭다.


어릴 적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엄마 뒤를 오빠가, 오빠 뒤를 언니가, 언니 뒤를 내가, 내 뒤를 동생이 동생 뒤를 강아지가 쫑쫑쫑 따라 걸었던 설날 아침 산소 가는 풍경이 떠올랐다.


엄마 무덤가에 새로운 풀들이 자랐다. 까치 나물, 보랏빛 광대나물 꽃이 피었다가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려 있다. 풀들을 뽑으려다 봄맞이하려 나온 풀꽃이 대견해 그냥 두었다. 엄마와 인사를 나눈 뒤 돌아서는데 보랏빛 광대나물 풀꽃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머문다.


코로나 시대에도 찾아온 설날,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세배를 드린다. 서울 오빠 댁은 명절 앞날 도착해 이른 아침을 먹고 산소에서 세배를 하고 서울로 향했다. 점심때에는 언니가 다녀가고 우리 가족은 하오 세시쯤 들렸다.


모든 가족들이 만나서 부쩍 대는 명절은 언제쯤이나 될 것인지.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어릴 적 살았던 고향 길을 떠난다. 명절을 보내며 예년에 비해 달라진 풍경들 속에서 사람들의 삶도 다양하다.


엄마의 산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릴 적 벗과 통화를 하였다. 우리 세대는 시댁의 풍습에 맞추어 사는 삶이기 때문에 고향집에 오는 벗들보다는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가 많다.


충청도에서 명절을 보내는 벗과 전화통화로 안부를 묻는다. “친정에 들렀다 간다. 우리 어릴 적만 해도 설날이 되면 한복입고, 새 옷 입고 이집 저집 세배 다녔는데 올해는 마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네. 날이 추워서인지 코로나로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적어서인지 참 쓸쓸한 명절이다.” 벗과 이런저런 너스레를 떨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설날에서 보름까지 풍경이 머릿속으로 스쳐간다.


현대인들은 예전에 비해 설날의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다. 그러나 농경문화를 살았던 시대에는 명절과 세시풍속은 삶의 중심이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 삶과 문화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길고 긴 겨울, 설에서 보름까지 추억이 많다. 설날이 지나고 초사흘이 되면 어머니는 떡국을 끓여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점심을 차려 드렸다. 마을에 노인당으로 떡국과 김치를 나르신 어머님의 발걸음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향 마을을 다녀오는데 코로나로 노인당에도 인기척이 없다. 코로나로 이웃 간에도 경계를 두고 살아간다.


설의 유래를 보면 ‘설’이라는 단어는 ‘삼간다’는 뜻으로 ‘1년간 무사히 지내게 해 달라는 기원’ 에서 유래 되었다. ‘섧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어 해가 지남에 따라 나이가 드는 처지를 서글퍼 한다는 뜻도 있다. 한해를 세운다는 의미인 서다에서 유래되었다는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 말이 있다. 춥고 밤이 긴 설 무렵에 눈이 내리게 되면 쌓인 눈이 농작물을 덮어 흙에 충분히 공급해 되어 농사가 풍년이 되므로 조상들은 설에 눈이 오기를 바랐다고 한다. 보름달은 밝으며 그해 농사가 풍년이 된다. 보름까지는 마을에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 다양한 놀이를 했다.


TV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한 연예인이 나와 명절이면 유독 바람이 차갑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1년을 지내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데 왜 명절에는 유독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객지에서 지내더라도 명절이 되면 가족이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타향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명절이면 가족과 친지를 만나 그동안의 삶을 이야기하는 풍습이 몸속에 베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명절에 보낸 문자를 이제야 보신 익산 형님이 답을 보내왔다. “누군가 올 것 같아 자꾸만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네.” 라는 글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친지들을 자주 만나지 못한 채 그리움만 쌓여가는 코로나 시대에 설을 보내며 많은 생각을 해본다.


코로나 시대에 설날을 보내며, 근대 시대를 살아왔던 삶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누구나 각 시대에 맞는 설날의 삶의 무늬가 있다.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자신에게 기억되는 설날 풍경의 무늬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다만, 설날의 풍경의 무늬가 각 세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설을 보내며,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 서글픈 것은 아름다운 풍경의 무늬들이 점점 소멸되어 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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