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달집 불이 하늘로 오른다. 달과 만나 소원을 이룬다. 불꽃이 피어오른다. 들판이 춤을 춘다. 붉은 빛은 하늘위로 올라 폭죽이 되어 땅으로 내려온다. 땅은 봄을 맞이한다. 불이 춤춘다. 삶이 춤춘다. 들판과 인간의 마을에 생명이 솟는다.
2월은 대보름이 있는 달로 달집태우기, 쥐불놀이를 한다. 우연히 정월 대보름 신나는 쥐불놀이 신청 광고를 보았다. “온 동네 아이들, 다모여라” 문구를 써놓고 초등학생 10명만 모집한다.
코로나 상황과 4차 산업 혁명으로 인해 농경문화에 있었던 우리의 풍습과 놀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시대적 상황에 삶에서 사라지는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어린 시절 이발소는 남녀노소 누구나 머리를 자르는 곳이었다. 이발소의 높은 의자에 올라 앉아 머리를 자를 때 거울에 보이는 그림이 밀레의 ‘이삭줍기’, 만종이 걸려 있었다.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평화로운 생각이 드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림 속에 시대적인 삶과 스토리를 안다면 그림을 다시 보게 된다.
이발소 그림이 서양 그림이 걸린 것은 단발령이 시작되면서 유럽풍 이발소 인테리어의 몫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때,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피카소의 작품, 클림트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현재는 다양한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은 그만큼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발소에 서양의 그림이 걸려 있는 이유를 찾은 책이 있다. ‘시대를 훔친 미술’ 이진숙의 책 내용을 보면 ‘이발소 그림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작품 그것은 밀레의 시선에 힘입은 것이었으리라. 밀레는 농민들에 대한 절실한 희망을 품었음에도 그들이 산업사회의 노동자 계급으로 몰락할 운명임을 알고 있었다. 사라져 갈 것을 알기에 그들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고자 하는 절심함은 더욱 강력해진다.’ 의 내용을 보면 유럽에서 밀레의 그림이 산업사회의 등장과 함께 삶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에 대한 유럽의 문화가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이다.
밀레는 자연주의, 사실적인 모습을 그린 화가다.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은 ‘시대를 훔친 미술’에 이진숙의 내용을 첨부한다.
‘그림 속에 여성들은 농민들 중에서는 최극빈층 소작농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추수한 곡식들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땅에 떨어진 낟알을 주워가는 것은 허락되었지만, 그마저도 어떤 사람이 특별히 많이 가져갈 수 없어서 조사를 받은 후에 집에 가져갈 수 있었다. 저 편에는 말을 탄 감시자가 보인다.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더미는 얼마나 적은지 오랫동안 허리 한번 펴지 못하는 고된 노동의 대가치고는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라고 되어 있다.
밀레의 독특한 미학은 평화로운 구도와 함께 농민들의 노동의 가치를 남기고 싶어 했던 것이다.
산업혁명은 오랫동안 인류가 가져왔던 농경문화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밀레는 농민을 사랑했으며 숭고한 노동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했다.
이후 사람들은 산업사회가 되면서 이러한 모습이 사라져버릴 것 같아 농경문화의 삶에 대한 애수가 액자가 된 것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찾는 이발소에 복제된 작품이 들어온 것은 산업화, 도시화 되면서 삶에서 멀어진 것,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시선이 머물러서일 것이다.
페이스 북에 제주도 유채꽃밭 그림을 올려놓았다. 유채꽃밭 담장을 걷는 사람들은 단발머리에 치마 저고를 입고, 수건을 쓰고, 항아리를 이고 걸어가고 있다. 삶에서 멀어져 가는 풍경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우리는 삶에서 사라져 가는 것에 시선은 더 오래 머문다.
우리 삶에 사라져 가는 것은 안개 같아서 손에서 잡으려 하면 스멀스멀 빠져나간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삶에서 멀어져 가면 문득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그러기에 멀어져 가는 것, 사라져 가는 것은 머리보다 가슴이 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강변 산책을 나갔다. 드넓은 강변은 자전거 도로가 나 있고 아름드리 자리 잡았던 나무는 새로운 나무가 자리 잡았다. 강변 저쪽에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삶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무수히 많은 기억들이 윤슬처럼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