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려다 손을 씻기 위해 비누를 집어 들었다. 비누가 몇 조각으로 부셔졌다. 순간 “버릴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조각비누를 스타킹에 넣어 아껴 쓰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뜨거운 물을 틀어 비누를 뭉쳤다. 한 달을 넘게 쓸 것 같다.
살면서 버려야지 하는 것이 많다. 그것은 물건뿐만이 아니다. 슬픔도 버려야지 하면서 살아가는 용기를 얻을 때가 있어 마음 저 깊은 속에 모아둔다. 그래서 다시 모아 둔 물건과 삶이 많다. 그렇게 내 곁에 모아 둔 것은 정이 들어 나와 함께 존재한다.
다시, 봄이 시작되었다. 마을 호숫가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다. 섬진강으로 무작정 길을 나섰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만난다. 길을 떠날 때는 외로움도 함께 한다.
섬진강 다리위에서 창문을 열고 차가운 강바람을 만난다. 마음 깊은 곳에서 봄을 만나는 시간이 슬프다. 섬진강 물은 푸르다. 봄의 길은 겨울의 길과 다른 것처럼 물도 겨울의 물색과 여름의 물색이 다르다.
섬진강 유곡마을에 아담한 카페가 있다. 좋은 원두를 갈아 만들어주는 카페에서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을 마시며 파마나산 블루마운틴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서 바라본 강가에는 은행나무, 소나무에도 봄이 올랐다. 힘차 보이는 나무를 보니 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봄 햇살을 내 몸 등에게 가장 많이 만나게 해주었다. 간간히 바람이 살 갓을 간지럽힌다. 살아서 행복한 날이고 햇살이 좋아서 아름다운 날이다. 작은 마을 카페에서 만난 인연을 뒤로하며 구례 역으로 차를 몰았다. 다시 길을 나선다.
구례에서 순천 가는 방향으로 길을 접어 섬진강 다리를 건넌다. 섬진강 물이 차 오르기 전 작은 휴게소에서 먹었던 국수가 생각나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주인장이 바뀌었지만 맛깔스러운 국수를 먹었다.
구례 역 대합실 카페에 마지막 시간을 열었다. 카페 책꽃이에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책을 만났다. 그는 여행을 위한 장소들 내용에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그 외로움을 깊이 호흡한다.
알랭드보통은 집단적 외로움과 마주치자 그림을 보는 사람이 자신의 슬픔의 메아리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 슬픔으로 인한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 더 깊은 슬픔은 나를 견디게 하는 힘이다.
봄이 오지만 깊은 슬픔이 밀려오는 날이다. 알랭드 보통의 책에서 평소 좋아하는 호퍼를 만나고, 보들레르의 시를 만난다. 그는 이렇게 글로서 세상과 소통한다. ‘나는 책을 통해 고독, 도시생활, 근대성, 밤이 주는 위로, 여행과 관련된 장소에 공유’ 한다.
나도 가끔씩 슬프고 외로울 때 나와 공유할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이 마음을 위로해 준다. 슬플 때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더 깊은 슬픔이라는 말에 의미가 다가온다.
깊은 슬픔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외로움을 만나는 연습도 필요하다. 더 깊은 고독, 도시생활을 벗어나는 여유, 저녁이 오는 시간에서 붉은 노을을 만나는 시간에서 충분한 고독은 나를 일깨우는 힘이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특히, 요즈음 정치는 세상에 대해서 분노한다. 세상사에 관심을 갖다보면 머리를 흔들고 싶다. 그럴 때 가끔은 내안의 깊은 슬픔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봄 햇살이 환해서 갑자기 밀려드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힘들 때 내안의 나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알랭드 보통이 그랬을 것이며, 호퍼가 그랬을 것이며, 보들레르가 그랬을 것이며, 윤동주가 그랬을 것이며, 백석이 그랬을 것이며, 고흐가 그랬을 것이다. 더 깊은 슬픔과 마주하는 이는 그 슬픔을 이겨내고 글과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했다.
봄이 오는 강변에서 더 깊은 외로움과 만나는 연습은 나를 일깨우는 힘이다. 강변을 따라 돌아오는 길에 섬진강에 봄빛이 환하게 다가온다. 그 빛이 흐리게 보이는 것은 봄은 환희와 외로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봄빛은 화려하지만 그 색이 명확하지 않는 봄을 갖고 오는 것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꽃을 피우지만 언제나 다릅니다. 바람나라, 햇볕 따라, 봄의 물 기운 땅기운 따라 아시나요.’ 조병화 시인의 해마다 봄이 되면 시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