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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 펭귄마을을 걷다
  • 호남매일
  • 등록 2022-04-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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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어 하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준관의 ‘구부러진 길’ 시 일부분이다.


미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는 길에 벗과 동행 했다. 우리나라의 근대 문화와 삶을 접근할 수 있는 장소인 양림동 펭귄마을로 향했다. 울타리너머로 “밥 먹어” 라는 소리를 듣지 못해도 골목마다 정겨운 이야기는 끝이 없다.


펭귄 마을에서 시간여행을 한다. 봄 햇살이 머무는 날이라 걷기 좋다. 차들이 양보한 골목길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대문 앞 화분에 심어놓은 상추와 시금치는 봄비를 맞아 웃자라 있었고 한 평도 안 되는 꽃밭에는 봄꽃이 사람을 반긴다.


펭귄마을 구부러진 길은 걷다 멈출 수밖에 없다. 골목길에서 시와 노래를 만나고 삶을 만난다. 양림동 펭귄마을은 골목마다 예술이 숨 쉬고 있다. 길을 걷다보면 좋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 맞는 말이다.


양림동 골목길은 걷다가 멈출 수밖에 없다. 골목을 돌아 서는 곳마다 이야기가 숨어 있다.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과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골목길 끝이다. 세상의 끝에 펭귄 붕어빵이 있다. 펭귄이 사는 남극에서 붕어빵을 사들고 골목을 누빈다.


골목을 돌면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고개를 쏙 내다보면 사람 냄새가 난다. 구부러진 담장에 낮게 피어 있는 풀꽃도 사랑스럽고 주인장이 정성스럽게 가꾼 마늘, 파, 키 작은 장다리꽃도 정겹다. 펭귄마을 가게마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눈을 즐겁게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시장에서 파는 물건과 생활양식을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골목길에서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푸른 하늘위로 울러 퍼지는 함성과 함께 구부러진 길 쪽에 순이가 나올 것만 같고, 철수가 뛰어가는 장면이 눈으로 그려진다.


승효상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라는 책에서 골목길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집밖의 공간들은 단순히 통행만을 위한 길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이며 늙은이들은 모이는 경로당이고 아낙네들이 모여 일하는 작업장이다.’ 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동네를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침하게 파괴하기보다는 옛날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박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지혜로운 공간들을 살려서 오늘의 건축으로 되살리기만 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동네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펭귄 마을은 마을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펭귄 마을을 걷고 있을 때 마음을 움직이는 울림은 그들이 모여 사는 방법과 공간적 구조가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펭귄마을 골목 어귀에 피어난 민들레, 괭이밥, 작은 풀꽃에게도 인사를 해본다. 대문을 열고 불쑥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동네 어르신에게도 인사를 할 것 같은 정겨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사람들이 더 편하고 빠른 길을 좋아하는 시대에 시간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벗과 함께 노닥노닥 이야기하며 걷는 길, 느릿느릿 걸으면서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길이 있는 양림동이 좋다.


양림동 펭귄 마을을 걷노라면 이방인도 골목의 일부가 된다. 마을 사람이 되어 골목에서 놀며 문방구에서 오래된 연필과 공책을 만지작거리며 어릴 적 엄마에게 혼나면서 먹었던 과자를 먹으며 길을 걷는다. 그곳에서 어릴 적 추억을 만난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을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걸었던 그 길, 골목길을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어린이, 청년이 가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따르고, 아주머니, 아저씨가 지나고, 강아지, 고양이가 놀다 가는 길, 양림동 펭귄마을 골목길에는 생명이 움트는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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