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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이 소중하다’
  • 호남매일
  • 등록 2022-04-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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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봄이 오긴 왔나보다. 일상에 짬이 생겨 동네 산책을 했다. 길마다 꽃들이 만발하다. 벚꽃과 조팝꽃 사이 길을 걷는다. 그 아래에서 빛나는 작은 풀꽃들… 꽃이 너무 아름다워 순간, “이 봄을 다 담기에 시간이 부족해” 라는 내적 언어를 쏟아내며 길을 걸었다.


동네 산책을 하면서 봄을 찾아 멀리 떠난 곰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며칠 전 가족과 함께 봄 찾아 제주도 여행을 했으니 말이다. 올해의 봄은 남도와 제주가 함께 온 것 같다. 섬진강 길에 벚꽃, 제주도의 녹산로 유채꽃과 벚꽃, 그야 말로 꽃 잔치에 꽃 대궐이다.


해마다 봄을 맞이하지만 봄을 눈과 마음에 담아내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년 코로나 상황에 일이 없어 K는 봄을 보내기 아쉬워 강원도까지 꽃을 따라가 집에 돌아와 보니 한 달이 다 가버렸다고 한다. 그만큼 봄을 보내기 싫었던 것이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다. 돌아보면 꽃들이 피어 있고, 돌아서면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서울에서 벗이 내려왔다. 미리 봄을 만나기 위해서 남도에 들렸다. 신안 임자도에서 피는 튜유립 보고 싶어 먼 길을 달려 왔다. 신안으로 가는 길에 무안에 있는 낙지 짬뽕으로 점심을 먹고 길을 달렸다.


오랜만에 만난 벗을 위해 그 다음 날은 섬진강으로 발길을 돌렸다. 벚꽃이 핀지 열흘도 되지 않아 꽃잎이 날린다. 일장춘몽이다. 섬진강의 벚꽃이 바람에 날린다. 꽃보고 하늘보고, 꽃보고 강보고 하다 보니 어느새 봄이 간다.


구례에서 유명한 ‘부부식당’ 에 갔다. 그전에 세 번이나 가서 줄을 서야 하는 상황에 포기했던 식당이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갔다. 그런데도 번호표를 받았다. 다행이 순서가 1번이다. 기다리면서 경기도 안산에서 여행을 온 엄마와 딸을 만났다. 구례 여행안내를 해 주었다. 엄마와 딸은 가족 중에 서로 여행 코드가 맞아서 1박 2일 기차를 타고 내려와 택시 여행을 한다고 했다. 엄마와 딸, 보기 좋다.


식사를 마치고 강변이 보이는 찻집에서 벗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식과 남편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덧 자녀가 자라니 남편보다는 자식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편은 혼자가 되어서 집을 지키는 방콕이 되었는데 자업자득이란다. 독불 장군처럼 호령했는데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혼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벗은 주변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랫동안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더니 가족에게 외톨이가 되었다.


아버지가 가족과 합류하자 그 동안의 공간과 상황이 바뀌면서 아들이 아버지와 맞지 않아 같이 못 살겠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린 채 직장생활을 했는데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가족에게 소통하지 못하는 외톨이 신세가 된 것이다. 결국 아들이 월세를 얻어서 나가는 상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족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섬진강 물은 흐른다.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잘 흘러가야 할 것인데 생각에 잠기며 차를 멈추어 강물을 바라본다.


‘꽃 지니, 참 좋다. 열매 맺으니’ 라는 언어가 생각나면서 우리의 삶도 열매를 맺어가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벗에게 이야기했다. 남편과 삶은 우리가 인생의 길을 걸을 때 동반자적인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식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짝과 함께 여행길을 떠나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해봐 조금만/ 마음을 조아려 생각해봐/ 세상에서 귀한 가장 귀한 것들은/ 오래되고 낡은 것이고/ 초라한 것이고 작은 것들이야/ 왜 그걸 몰라/ 왜 그런 것을 눈감아/ 가족이 그렇고 우리의 집이 그렇고/ 내가 사용하는 물건 하나하나가 그렇고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이웃들. 나의 친구가 그렇고/ 그 무엇 그 누구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래’


나태주 시인의 ‘오래된 것이 소중하다’ 일부분을 시를 읽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떠한 것에 눈을 떠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래된 것이 소중하다.’라는 것은 세월이 익어가면서부터다.


오래전에 찍었던 스냅 사진이 눈에 들어오고, 촌스러웠던 엄마의 자개농이 보여 지고, 아빠의 구슬픈 유행가 소리가 생각나는 것,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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