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는 연인을 찾아가 불을 지르거나 폭행 끝에 살해하는 등 데이트 폭력(교제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지만 피해자 보호제도는 전무한 실정이다.
\'교제 관계를 법으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탓이다. 미국, 영국 등 해외국가에서 연인 간 폭력의 피해자도 가정폭력 피해자와 똑같이 보호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신고건수는 2016년 9364건, 2017년 1만303건, 2018년 1만245건, 2019년 1만9940건, 2020년 1만8945건으로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다.
데이트 폭력은 여러 번 반복돼도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부부 관계에서 일어난 폭행은 즉시분리나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연인 관계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 2016년 이후 데이트 폭력을 별도로 규정한 특례법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해 \'교제 관계\'도 가정의 일환으로 보고 피해자를 보호하도록 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을 발의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현장에서 피해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 피해자 보호가 시급하기 때문에 일단 가정폭력법에 조항을 넣어 발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에 대해 국회의 부정적인 검토 의견이 제출됐다.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가정폭력처벌법에 단순 교제 관계를 포함시키는 건 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교제 관계\'의 범위가 법적으로 불명확하다는 이유다.
그러나 국회 검토보고서는 \"이런 정의만으로는 단순 친구 관계를 배제할 수 없고 결혼한 사람끼리의 교제, 동성 간 교제 또는 3자 이상의 교제 등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모두 포함할 수 있어 그 범위가 불명확하다. 교제 여부에 대한 당사자 간 주장이 엇갈리는 경우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했다.
선진국에서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을 같은 범주에 넣어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에서는 각각 가정폭력방지법과 여성폭력방지법에 데이트 폭력을 포함시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 영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연인의 전과 기록을 조회할 수 있는 \'클레어법\'도 시행 중이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문자 등 SNS 대화나 어떤 모임에 연인으로 나타났다는 증언 등을 통해 연인 관계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다른 국가에선 다 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해외에서는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폭력을 같은 법으로 다루면서 \'친밀한 관계\'를 정의하고 있기도 하다\"고 밝혔다.
부정적인 검토 의견에도 국회에서 의지를 가지면 충분히 법 통과가 가능하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논의에 미온적인 모습이다.
국회 보좌진 출신의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법사위 자체가 중년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 있고 최근 검·경수사권 조정 같은 이슈에만 집중해 법을 논의할 여건이 안 돼 있다\"며 \"법이 계류되어 있는 동안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은 일주일에 한 명꼴로 사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가정폭력특례법 개정안은 지난해 1월11일 발의됐으나 1년 넘게 논의되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원 구성이 마무리돼야 법안 심사가 재개될 텐데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