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시골 골목길을 걷는다
  • 호남매일
  • 등록 2022-09-14 00:00:00
기사수정

/김명화교육학박사·동화작가


한가위에 고향에 들렀다. 동천에 차를 주차하고 골목으로 접어든다. 학동 댁 할머니의 마당에 풀이 가득하다. 올해도 빈집만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감나무가 많았던 집은 감나무 뽑힌 자리에 빈 텃밭에 풀만 무성하게 자라 있다. 울타리에 열매 없는 콩 넝쿨이 담장을 이룬다.


내 어릴 적 이웃은 없지만 골목길에 들어서면 어릴 적 풍경이 그려진다. 시골집 골목길을 걷는다. 누에를 키우던 집에는 가장 큰 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아낙네들의 삶의 장소이자 놀이터였다. 깊은 우물은 소멸되었다. 골목을 시나브로 걷는다. 정겨운 풍경들이다.


내 기억은 풍경을 밀고 골목길을 걷는다. 한가로운 시골 골목길은 고요하다. 예전에는 골목마다 아이들의 함성이 담장을 넘었는데, 시골집 담장에는 호박넝쿨이 풍경의 운치를 더해준다. 사람을 잃은 골목은 외롭게 견디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골의 골목은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데 대도시 주택가 골목길이 살아나고 있다. 그러한 이유는 사람들은 잃어버린 삶의 향기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가 골목에 살았던 풍경의 기억을 찾기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놓쳤던 아름다운 기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서울 도심의 익선동 골목길을 걷다보면 몇 걸음 가지 않아서 상점을 만난다. 그 상점을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놀게 된다. 골목길의 문화를 잘 살린 공간이 백화점 쇼핑몰이다.


한 가지 다른 것은 백화점 쇼핑몰은 하늘이 보이지 않으며 유리창과 시계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쇼핑을 하게 된다.


주택가 문화가 넘쳤을 때에는 쇼핑센터가 우리에게 신선한 영향을 주었다면 아파트 문화에 살면서 이제는 답답한 쇼핑몰보다는 하늘이 보이는 주택가 골목길을 찾게 된다. 공간은 우리 삶에 많은 여향을 미친다.


아파트의 공간은 우리 삶에 숨바꼭질 하듯 사람들이 숨기에 안성맞춤이 공간이다. 문제인 것은 어릴 적 숨바꼭질은 친구를 찾게 되었는데 이제는 누가 찾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아파트 문화다.


골목길은 골목과 길의 두 단어가 합쳐졌다. 골목은 계속 길이 연결된다. 마을의 입구가 시작되고 마을이 끝이 되기도 한다. 골목에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길은 사람이 만들며 길은 사람은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골목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골목이 있는 주택의 장점은 다른 집의 공간의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 문화가 되면서 우리는 숨바꼭질 하듯 서로의 공간으로 숨어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골목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골목길에는 풀 한포기 자랄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건축가 유현준에 의하면 ‘이탈리아 베니스는 다른 도시에 비해 면적당 골목이 많은 도시다. 같은 시간에 사람마다 여행의 경험이 다르다. 백 명이 여행했다면 백 명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고 한다.


따라서 베니스를 여행하면 많은 경험과 이야기 거리가 있어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러한 이유에서였을까? 베니스 여행 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골목을 누비며 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골목길에는 운치가 있다. 서울의 경리 단길, 익선동, 가로수 길에 사람이 넘쳐나는 것은 우리가 살았던 그리움의 고향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시골의 골목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는 골목길을 걷는다. 바람이 밀고, 풍경의 기억을 몰아 걸어본다. 이맘 때 쯤 이면 골목길 울타리에는 봉숭아꽃, 맨드라미, 분꽃이 씨앗을 맺는다.


마을 뒤쪽으로 걷는다. 몇 십 년이 넘은 배나무가 있는 집은 나무는 그대로인데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한가위인데도 골목길에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어릴 적 골목길은 “OO야 놀자.” 로 하루가 넘어갔는데 아이들의 함성이 사라진 골목에서 오랫동안 서 있다.


내 기억의 풍경은 골목 집집마다 친구들이 뛰어나오고 있다. 골목길에서는 유년의 풍경을 담고 있다.


골목길을 걷는다. 유년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사라져 간다.


그러나 무엇인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잠식해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늘 우리와 함께 머문다. 그 기억의 풍경을 밀고 골목길을 걷는다. \\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문화 인기기사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