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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9월
  • 호남매일
  • 등록 2022-09-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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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로 돌아와 호올로 선다.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 문병란 시인의 ‘다시 시작하는 마음’ 으로 시의 한 부분이다.


여름의 이별을 고하고 가을의 입구로 가는 느낌을 주는 시다.


9월은 분명 가을의 계절이다. 그런데 올해는 가을철의 옷을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날이 뜨겁다.


일기예보에서도 몇 년 만에 9월의 여름더위다. 강한 햇살아래 얼굴이 찡그려진다.


가을 늦더위에 뒷산 등반을 하였다. 아파트 백일홍 나무 끝자락에 몇 개의 꽃잎만 붙어 있다. 가로수 길 마로니에 나무에도 노란 잎이 엷게 물이 들었다.


가을은 시나브로 우리 곁으로 오는데 뜨거운 날씨로 이게 가을인지 여름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한해의 절반을 넘어 가을의 문턱에 반해를 정리해 본다. 코로나 펜데닉 상황을 잘 견디며 가을을 맞이했다. 가을이 오면 그 무덥고 습했던 여름의 기억을 하나둘 지울 것이라고 했지만 멈추어버린 계절에서 마음마저 갈팡질팡한 가을을 맞이한다.


뒷산 등반을 하는데 구름이 아름답다. 뭉게구름을 보니 가을이 왔구나 생각이 든다. 등반 길에 개미취, 꽃무릇도 피었다.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로 우리를 안내한다. 머지않아 바람도 가을의 입구에서 가을의 노래를 부를 것 같다.


산을 오르는 것은 가을마중이다. 한줄기 바람에서나마 가을을 만난다. 지나간 여름에서 9월을 아름답게 보낼 생각을 했다.


여름과 가을의 길목에서 소식을 듣는다. 수도권에서 사는 벗의 아들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올 여름 무더위에도 자신을 이겨가며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물을 얻은 벗의 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특히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통한 성취감은 아들에게 또 다른 미래를 설계할 에너지를 줄 것이다.


O도 응원한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기 위해 다시 공부에 매진하는 O는 여리지만 대단한 친구다. 아버지가 간이 좋지 않아 자신의 간을 이식해준 용감한 친구다.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시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모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4년 전 코로나 상황에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부모를 위해 보낸 O가 이번 연말에는 좋은 소식을 보내오길 바래본다.


20대 초반인 J는 올해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학업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면 용돈을 벌던 J는 대상포진, 염증, 발목까지 다쳐 고생을 많이 했다. 힘든 삶의 과정을 통해 건강의 중요성을 안 J는 “올해는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어요,” 혹독한 20대를 보내는 J가 9월부터 건강한 삶이 이어졌으면 한다.


K는 담양에 산다. 시간강사다. 대학이 있는 광주가지 오려면 마을 앞 버스 정류소에서 이른 아침 버스를 탄다. K는 자동차가 없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고 다닌다. K는 저탄소 환경운동을 동참하고 있다. K의 가방 안에는 주머니가 들어 있다.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느림의 미학으로 살아가는 늙은 청춘 K를 추앙한다.


산을 내려온다. 뒤 산 내려오는 길에 텃밭 울타리에 작두콩 열매도 매달렸다. 그 옆에 나팔꽃도 이별을 고하고 있다. 탱자나무, 은행나무, 대추나무도 열매를 맺었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계절에 열매는 익어가고 삶도 익어가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하지만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청춘을 응원한다. 기쁨, 슬픔, 인내, 배려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기억해본다.


다시 시작하는 9월의 청춘에게 응원을 보내며 좋은 결과를 맞이한 청춘에게 새로운 직장생활이 활기차길 바란다. 시원했던 가을의 바람을 기억하며 산을 내려온다.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가로수길 마로니에 나뭇잎이 툭 내려앉는다.


이성선시인의 ‘미시령 노을’ 이라는 시가 내 기억 안에서 맴돈다.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9월의 언저리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청춘의 삶도 가벼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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