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식 한국문협·시조시인협회원
아침운동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탁구교실에 참여하기 위해서 서둘러야 한다. 주차장이 있으나 비좁아서 장날이면 북새통이다.
주민센터 직원을 비롯하여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장꾼들의 차로 대 만원이다. 그 틈새를 뚫으려면 평소보다 일찍 나서야 한다.
서두른다 해도 출근 시간이 맞서기에 정체에 걸리면 영락없이 밀려난다.
몇 바퀴 돌다 보니 번득 꾀가 났다. 간간이 당해봤던 방법을 나도 써 보자는 생각이다.
두어 분께 미안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피차 이해해 줄 것으로 믿고 차 앞에 차를 세웠다. 한 번만 수고하면 다음은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출하면 뛰어나갈 요량으로 운동 중에도 항상 휴대폰에 귀를 기우린다.
오늘도 그럴 셈으로 운동을 진하게 마치고 나오는데 번득 스치는 예감이 예사롭지 않다.
오늘은 휴대폰을 챙기지 않았음이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꽤 긴 시간였는데 차들은 그대로였다. 걱정 반 궁금 반.
아마 나처럼 긴 시간 일을 보았나보다 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차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상은 없다. 별일이 없음인가? 떠름한 생각에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봤다.
같은 전화번호가 여러 번 찍혀 있었다. 숨죽이고 통화버튼을 살짝 눌렀다.
“여보세요, 우리 아빠가 돌아가셔서 촌에 가야 하는데 그렇게 막아놓고 전화를 안 받으시면 어떻게 해요. 택시 타고 간단 말예요.”
여자의 볼멘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날이 갈수록 건망증이 기승을 부리더니 기어코 일을 냈다. 금새 잊고 또 잊는다. 이것이 늙음인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어떤 말로 그를 위로하랴, 엄연한 현실인데, 내가 이런 아픔을 남에게 주다니, 어떻게 그 울화와 그 수고를 보상할 것인가? 방법이 없다.
아무리 내 편에 선다 하여도 나는 서너 배 더했을 것이다. 측은한 정이 느껴진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그 차는 그 자리에 있었다. 삼일장을 치룰 거라 믿고 나흘째 되는 날은 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부담 없이 받을 만한 금액을 봉투에 넣어 승용차의 앞 번호판 뒤꼍에 끼워놓고 전화를 하였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받아달라 하였으나 끝내 거부하는데 어쩌랴.
며칠 후 그분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때는 화가 나서 한 말이니 이해해 달라며 돈은 결코 받지않겠다는 것이다. 간청하여도 막무가내다.
자신도 차를 가지고 다니는데 그런 일 없으란 법 있냐며 안 받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안해한다.
하는 수 없이 계좌번호를 불러줬다.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몽롱하다.
악연도 풀기에 따라 인연이 되는가? 지금도 그분의 따뜻한 마음이 잔잔한 파동으로 내 가슴을 적셔온다. 그분의 고운 모습이 보고 싶다.
-동행-
더듬더듬 짚어온 길
물어물어 가야할 길
숙명의
항로 따라
애환도 젖었어라
저 바람
갈 곳을 몰라
길동무를 하잔다